[군사학] 6.25전쟁과 북한의 대남도발사례
- 최초 등록일
- 2013.08.26
- 최종 저작일
- 20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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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①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큰 비극 중에 하나인 6.25 전쟁의 반발 책임을 놓고 서로 다른 주장이 있어왔다. 6.25전쟁의 배경과 발발원인은 무엇인지 얘기해 보자.
② 북한이 개전3일만에 서울을 점령하고, 3일간 지체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③ 6.25전쟁초기 우리나라는 대구와 부산지역 일부를 제외하고는 전 국토가 공산치하로 들어갔고, 국가의 운명은 백천간두에 서 있었다. 이 급박한 상황에서 다시 반격작전을 전개하여 공산군을 물리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④ 북한이 남한지역을 점령했을 당시 가장 널리 선전한 것은 ‘무상몰수, 무상분배’라는 구호하에 실시된 토지개혁이었다. 그런데도 우리 국민들의 호응을 받지 못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⑤ 정전협정 체결 당시 클라크 유엔군사령관, 김일성 북한군사령관, 팽덕회 중국 군사령관이 서명하였고, 이승만 대통령은 정전에 반대했기 때문에 서명하지 않았다. 이후 북한은 정전협정에 서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평화협정 역시 미국하고만 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북한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⑥ 1999년과 2002년 발생한 두 차례의 연평해전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교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⑦.기사모음
본문내용
북한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대규모 포사격을 시작으로 기습남침을 시작했다. 3단계로 짜여진 전쟁계획에 따라 당시 최신무기였던 T-34 탱크 242대와 소련제 무기로 무장한 10개 사단이 물밀 듯이 밀려들어 왔다. 당시 탱크한대 없던 국군은 육탄으로 탱크를 막아보려 했지만 너무나 역부족이었고 남한의 수도인 서울을 3일 만에 점령당하는 수모를 겪게 된다. 그런데 북한은 3일만에 서울을 점령하고도 3일이라는 시간을 서울에서 지체하게 되었는데 그 이유로 3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북한의 도하장비 부실에 대한 이유다. 국군이 서울을 쟁탈당하지 않기 위해 강렬히 저항하다가 버틸 수가 없어서 철수를 했는데 그 철수를 할 때 서울로 들어오는 한강다리를 폭파시킨 것이다. 보병과 탱크가 주력부대였던 북한은 한강을 도하하기 위한 장비가 도착할 때 까지 대기하느라 지체가 되었다는 이유가 첫 번째다.
둘째는 김포전선에서의 강렬한 저항이다. 당시 북한은 서울로 향하는 주력부대를 중심으로 김포방향, 춘천방향으로 병력을 나누어 오게 되었는데 주력부대는 도착을 했으나 김포 전선에서 강렬한 저항을 받아서 주력부대와의 합류가 늦어져서 지체가 되었다는 이유가 두 번째다.
마지막 세 번째는 춘천방향으로 오던 병력을 국군이 오히려 승리를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당시 북한군은 기습이라는 전술로 기세등등하고 자만감에 빠져있어 전술적으로 커다란 과오를 범하고 있었다. 이러한 점을 국군은 잘 포착하여 더욱더 전술적인 과오를 범하도록 유도를 하였고 이를 잘 이용한 국군은 북한군의 발목을 잡을 수 있을 만큼의 성과를 거두게 되었다. 이는 UN군과 미군이 참전하기 전에 우리군의 독자적인 전투로써 북한의 전쟁계획을 일부 수정하게끔 만드는 커다란 성과였다고 볼 수 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