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기독교사 책 중 전쟁중의 기독교 요약
- 최초 등록일
- 2013.08.27
- 최종 저작일
- 2012.04
- 4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목차
1. 전쟁 중의 기독교란
1) 일본기독교단 성립과정과 전쟁협력
2) 수난과 저항으로의 길
2. 적극적인 의사표시 방법
1) 교단 주류에 속한 사람들
2) 성결교 사람들
3) 구세군에 속한 사람들
4) 무 교회에 속한 사람들
5) 등대사에 속한 사람들
6) 기타
본문내용
전쟁 중의 기독교란 ;
1931년 (만주사변 1931년 9월 18일 일본 관동군이 만주 전역을 대상으로 침략전쟁의 병참기지로 만들기 위해 만철 연선에서 북만주로 일거에 군사행동을 개시하여 생긴 전쟁. (네이버 사전)
발발)부터 1945년(종전)까지의 기독교. 비교적 자유로웠던 1920년대 다이쇼 시대의 민주주의 시기가 지나고 정치, 사회, 경제 질서의 혼란 가운데에서 이러한 혼란들을 극복해 나가려는 일본 파시즘 하에서의 기독교이다.
1931년 유조구 사건 류타오거우 사건이라고도 하는 유조구사건은 1931년 9월 18일 일본 제국의 관동군이 중국의 만주를 침략하기 위해 벌인 자작극. 류탸오거우에서 스스로 만철 선로를 폭파하고 이를 중국 측 소행이라고 트집 잡아 침략. (위키백과)
으로 인해 만주사변의 발발부터 ‘비상시’라는 말을 사용하기 시작해 그 이후부터 모든 것들이 ‘비상시’에 맞추어 나가는 것같이 짜여졌다.
전쟁 중에 일본 교회 주류가 걸어온 길이며, ‘비상시’ 잘못된 전쟁 협력의 길인 일본기독교단 성립과정에 대해서 보겠다.
1) 일본기독교단 성립과정과 전쟁협력
1967년 부활절 일본기독교단 의장 스즈키 마사히사의 이름으로 ‘제 2차 세계대전하에서의 일본 기독교단의 전쟁 책임에 관한 고백’을 발표했다. 이 발표에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교회합동이 정부의 요청을 계기로 생긴 것이며, 그들의 잘못됨을 인정하는 것으로 보인다.
<중 략>
2)성결교 사람들
일본기독교단이 성립되었을 때, 성결교계 교회는 여러 가지 곤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교단에 가입하였지만 1942년 6월 돌연히 성결교계 교직자들이 일제히 체포되어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약 100여명이 취조를 받았고, 41명이 기소되었으며 징역 4년 이하의 형을 받았다. 그리고 1943년 성결교에 속한 200개 이상의 교회가 해산 명령을 받았다.
성결교계가 당국의 주목을 받은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사상이 천황 절대주의의 일본 국제와 맞지 않는 다는 것으로 천황 또한 하나님의 지배나 심판을 받는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또한 대동아전쟁을 그리스도의 환난의 시대라고 표현하여서 후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성결교계 사람들을 수난자로 보고 있으며 8명의 순교자 또한 생겼다. 일본 기독교단에 속한 여러 교파 가운에 가장 많은 수난자를 낸 것이 성결교 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