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정부에 대한 에세이
- 최초 등록일
- 2013.09.26
- 최종 저작일
- 20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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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박정희는 1961년 5·16 군사 정변을 주도하고 같은 해 7월 국가 재건 최고 회의의 의장이 되었다. 애초에 혼란이 가라앉으면 민간으로 국가의 통수권을 넘기겠다고 약도를 했기 때문에 군사 정변은 시민들의 반대 없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제5대 대통령에 취임하여 군부 세력을 기반으로 독재체제를 만들었고, 1967년 재선된 후 장기집권을 위하여 1969년 3선 개헌을 통과시켰다. 제3공화국 시기에는 '한·일 국교 정상화'와 '월남 파병 문제'를 강행하였다. 1972년 국회 및 정당해산을 발표 하고 전국에 계엄령을 선포한 후 '통일 주체 국민 회의'에서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이로써 유신정권인 제4공화국이 출범하였다. 유신체제 초기에는 새마을운동의 전 국민적인 전개로 농어촌의 근대화에 박차를 가하였고, 제 5차 경제개발계획의 성공적 완성으로 국민들의 절대적 빈곤을 해결하는 데 상당히 기여했다. 그러나 상대적 빈곤의 심화와 장기집권에 따른 부작용, 국민들의 반 유신 민주화운동으로 그에 대한 지지도가 약화되자 긴급조치를 발동하여 정권을 유지하려 하였다. 이런 가운데서 내부 통치의 어려움을 통일 문제로 돌파하고자 자주·평화·민족의 대단결을 민족 통일의 3대 원칙으로 규정한 1972년 '7·4남북공동성명'과 1973년 '6·23선언'이라 불리는 '평화 통일 외교 정책'이 제시되었다. 그러나 그 내용의 획기성에도 불구하고 실제 정책면에서는 북한의 비협조와 당시의 국제정세로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중 략>
후에는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의 이름이 경제 사회 발전 5개년 계획으로 바뀌었고, 제 5차 경제 사회 발전 5개년 계획은 이때까지 계획의 기초로 삼았던 성장을 빼고 안정·능률·균형을 기조로 하여 물가안정·개방화, 시장경쟁의 활성화, 지방 및 소외 부문의 개발을 주요정책 대상으로 하였다. 이 계획의 가장 큰 성과는 한국 경제의 고질적 문제였던 물가를 획기적으로 안정시킨 것이며, 이를 바탕으로 3저 현상의 유리한 국제환경변화를 맞아 경상수지의 흑자전환, 투자재원의 자립화로 경제의 질적 구조를 튼튼하게 하였다. 하지만 3저 호황 등의 문제는 세계의 각국 모두가 겪었고, 그로 인해 많은 성장을 했다. 결코 이가 박정희 대통령의 정책과 능력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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