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정치제도상에 나타나는 군주권과 신권의 길항관계
- 최초 등록일
- 2013.10.09
- 최종 저작일
- 20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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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국정운영에서 군신의 역할
2. 국정운영 체계의 형성과 성격
3. 고려의 권력구조와 재상권
4. 고려시대 신하들의 권력집중구조
5. 고려 후기 재상권의 변질
6. 대간제도
Ⅲ. 결론
Ⅳ. 참고문헌
본문내용
<서론>
고려왕조는 초기에는 호족연합정권이라 정의되기도 하고 왕권보다 신권이 크게 강화되었을 때도 있었던 만큼 고려시대에는 군신간의 관계가 어떠했는지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때문에 고려왕조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군주관과 신권의 길항제도를 중앙정치제도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그렇다면 고려 초기에는 국정운영 체계의 형성과 지향은 어떠하였을까? 고려에서 국정을 이끌었던 존재는 국왕과 신료였다. 이들이 국정을 이끌어 갔던 방식은 기본적으로 제도의 운영을 통해서였는데, 고려의 제도는 관청과 관직이 서로 결합하여 국정운영을 위한 체계를 이루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국정운영의 체계에는 그것을 만든 지배층의 입장과 관념이 반영되어 있으므로 고려 국정 운영의 체계와 그 성격을 알고자 한다면 체계의 내용뿐만 아니라 그러한 체계를 만든 지배층의 입장과 관념을 살펴보아야 한다.
<중 략>
군주권과 신권의 길항관계를 살펴봄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어사대의 기능이다. 어사대는 高麗史 百官志 司憲府條에 명기하고 있듯이, 시정의 득실을 논하고, 풍속을 교정하며, 백관을 규찰, 탄핵하는 것을 그 임무로 한다. 크게 탄핵, 건의 및 간쟁, 서경으로 분류할 수 있다. 고려의 어사대는 백관의 비정비리면 무엇이든 감찰, 탄핵, 치죄 할 수 있었고, 국정전반에 걸쳐 어느 것에나 자기 의사를 건의하며 시정시킬 수 있었으며, 국왕의 무절제한 사생활이나 시정에 대해서도 간쟁할 수 있었고, 서경도 담당하였다. 국왕 중에는 어사대의 기능의 중요성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그것을 최대한으로 활용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왕권을 강화하고 관료질서를 확립하고 국정을 안정된 방향으로 이끌어간 경우가 있었던 반면, 어사대를 의식적으로 억압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왕권의 약화와 관료질서의 혼란을 자초하는 경우도 있었다.
어사대의 탄핵, 건의, 서경의 업무에서 典禮 등 소수의 업무를 제외하고는 어사대의 활동의 반 이상이 여말에 집중되어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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