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과 제사문화
- 최초 등록일
- 2013.10.14
- 최종 저작일
- 2013.07
- 35페이지/ MS 파워포인트
- 가격 2,000원
목차
1. 제사의 의미
2. 유교와 제사
3. 국가의 제사
4. 사가의 제사
5. 마무리
본문내용
제사는 대상, 장소, 시기, 방법 등에 따라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하지만 이러한 많은 제사들의 근본적인 목적은 단 한가지, 바로 생명의 원천에 대한 보답
[ 예기 ] 에서 보면
‘군자는 비록 가난하더라도 제기를 팔지 않으며 비록 춥더라도 제복을 입지 않는다’라고 하여 후손들이 ‘신’에게 드리는 제사에 대한 경건한 자세를 지니고 있었고 신을 맞이하는 의례로서 인간의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한 조건이 됨
봉건적-봉건제도의계급에 따라 제사의 대상이 되는 조상과 같은 ‘신’의 범위가 한정되었다.
‘예’가 유교의 중심사상으로서 제례는 경건함을 기본으로 하며 그 의식절차를 매우 중시
제사란 ‘신’과 ‘인간’의 관계를 정립하고 그 둘을 소통하게 하는 역할
‘신’을 중심으로 제사의례를 통해 신앙생활의 기본단위가 가족이 되고 사회가 가족중심사회로서 자리잡았다.
유교사회는 기본적 사회조직으로서 가족을 중시하고 있으며 국가도 가족의 확장이며 천하도 가족관계로서 이해되기도 한다.
<중 략>
고구려
수림왕 2년(372)에 최초로 태학이 설립된 것으로 미루어, 이때 석전도 함께 봉행되기 시작하였을 것으로 추측
백제
국립학교에 해당하는 기관에서 석전 의식을 봉행했을 가능성이 있음
신라
진덕여왕 2년(648)에 김춘추가 당나라에 건너가 국학(國學)을 찾아 석전 의식을 참관하고 돌아온 후 국학 설립을 추진하였고, 신문왕 2년(648)에 그 제도가 확립됨
고려시대
국립학교인 국자감에서 석전을 봉행하였으며, 현종 11년(1019) 8월에는 최치원을 선성묘에 종향(從享)하고, 현종 13년에 다시 설총을 종향함으로써 우리나라의 성현을 문묘에 배향하는 전통이 시작됨
조선
성리학이 정착된 조선조에는 석전이 국가에서 주관하는 오례(五禮) 중 길례(吉禮)에 속하는 국가적 대사로서 봉행되어 옴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