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 vs 베토벤에 관한 고찰 리포트
- 최초 등록일
- 2013.10.21
- 최종 저작일
- 20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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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모차르트 vs 베토벤에 관한 고찰 리포트 입니다.
목차
1. 모차르트
2. 베토벤
본문내용
* 모차르트
모차르트가 탁월한 음감을 지니고 1756년에 태어났을 때, 세계는 이성적으로는 계몽의 시대였으며 산업적으로는 초기자본주의를 구가하고 있었다. 이 연대의 가장 큰 특징은 사회 각 분야에 대해 엄밀한 의미부여를 일제히 가한 것으로 요약될 수 있는데 어린이에 대한 새로운 가치 부여도 17,8세기에 이르러 형성되었다. 상승하는 시민계급의 자녀들은 자기만의 침실을 갖는 것은 물론 예술이나 가사에 관한 체계적인 교육을 받을 기회도 점점 늘어났다. 아울러 이 중산 계급의 가족구조 또한 어린이를 정점으로 새롭게 재편되기 시작하였는데, 토지재산을 매개로 하는 봉건적인 가족구조로는 상공업을 기초로 하는 자본주의 사회에 탄력적으로 적응할 수 없었으며 급격하게 변화하는 사회구조 안에서 적응할 수 있는 근대적 가족구조는 당연히 핵가족이 합리적이다.
<중 략>
베토벤 이후의 독일어권 음악사도 이 민족주의 경향을 직간접적으로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베토벤이라는 큰 봉우리를 넘어선 독일 문화권의 음악가들에게 남은 문제는 어떻게 하산할 것인가밖에 없었다.
낭만주의의 공통된 우상은 베토벤이었다. 그러나 낭만주의자들은 두 갈래로 나뉘어져 서로 베토벤의 적자라고 주장하였다. 리스트, 바그너, 볼프로 이어지는 혁신주의자들은 이제 그만 베토벤의 그늘에서 벗어나자고 주장하였다. 멘델스존, 슈만, 브람스로 이어지는 회귀주의자들은 ‘그러나 베토벤!’이라고 주장하였다. 시벨리우스나 차이코프스키가 자국 내에서 민족음악가로 대접받듯이 어떤 면에서 이들은 모두 ‘독일 민족주의 음악가’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