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미술사] 1940년대, 1950년대 작품
- 최초 등록일
- 2014.02.25
- 최종 저작일
- 20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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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애국금차회 [愛國金釵會]
2. 이쾌대(1913-1965) <무희의 휴식>, 1938, 캔유
3. 김은호(1892-1979) <금차봉납도>, 1937
4. 김기창(1913-2001) <총후병사>, 1944
5. 김복진(1901-1940), <백화>, 1938, 1938년 제 17회 선전 입선작
6. 윤효중(1917-1967) <물동이를 인 여인>, 1940, 나무, 1940년 제19회 선전 입선작
7. 윤효중 <현명>, 1944, 나무, 1944년 제23회 선전 최고상 수상작
8. 이응노(1904-1989) <3.1운동>, 1946, 종이에 수묵담채
9. 이응노 <거리풍경: 양색시>, 1946, 종이에 수묵담채
10. 이쾌대(1913-1965) <해방고지>, 1948, 캔버스에 유채
11. 이쾌대 <군상IV>, 1948년 경, 캔유
12. 이쾌대 <작품>, 1948, 캔유
본문내용
애국금차회 [愛國金釵會]
중일전쟁(1937)이 발발하고 군수물자의 수요가 급증함에 따라 일제는 군수물자의 조달을 위하여 금의 채취와 금제품의 헌납을 강요하였다. 이에 1937년, 금제 장신구의 헌납, 국방비 헌납, 황군 환송, 총후(銃後) 가정의 위문 ·격려 ·조문 등을 목적으로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에서 애국금차회가 결성되었다. 조선총독부 조선중앙정보위원회의 권유로 귀족, 친일관료들의 부인과 여류명사를 중심으로 조직되었으며, 회장에 김복완(金福緩), 간사에 김활란(金活蘭)·민채덕(閔彩德)·심경섭(沈卿燮)·홍선경(洪善卿) 등을 선출하였다. 사무실을 경성부청에 두었고, 결성식 석상에서 금비녀 ·금반지 ·금귀걸이 등을 헌납하였다.
이쾌대(1913-1965) <무희의 휴식>, 1938, 캔유 1930년대가 사실주의파들이 주류로 재현을 목적으로 그림을 그렸다면 1940-50년대 작가는 야수파들이 주류가 되어 표현을 목적으로 그림을 그렸다. 이는 우리의 것을 알리려는 서막이 되기도 했다.
이쾌대는 1930년대에 향토색이 반영된 그림을 보고 조선의 흔한 것으로 한국적인 것을 추구하려고 했다는 것을 피상적이라고 하며 이를 탈피하여 좀 더 세련되고 근대성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한국을 드러내려고 했다. 따라서 전통의 겉모습을 익히고 거기에 근대성과 현실에 기반한 작업을 하였다. 이 작품은 전통적인 옷을(오방색의 옷과 족두리) 입고 있고 얼굴은 서구적인 미인상으로 그렸다. 혼성적 이미지를 구축하여 한국적으로 표현된 한국적 모더니즘 근대성을 표현하고자 했다. 무용수가 모티프로 이용된 것은 기생의 이미지가 아닌 전통적 무용수를 이용해 동양이 가진 고전적인 것을 색채로 선명히 부각하기 위함이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