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스토 곤잘레스의 간추린 교회사 요약 섬머리
- 최초 등록일
- 2014.10.22
- 최종 저작일
- 20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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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초대교회
2. 기독교 제국
3. 중세의 초기
4. 중세의 절정기
5. 중세후기
6. 정복과 종교개혁
7. 17세기와 18세기
8. 19세기
9. 20세기와 근대성의 종말
본문내용
제 1 장 초대교회
기독교의 시작에서 콘스탄틴의 박해를 끝낼 때 까지 (밀라노 칙령 313년)
초기 기독교는 자신의 신앙의 정체성을 밝히면서 발전해나갔다. 초기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유대교의 전통과 기독교의 특징이 다르다는 것을 입증해 보이는 일이었다. 팔레스틴 유대교는 그리스도가 탄생하기 300년 전에 알렉산더 대왕의 인도에서 애굽에까지 이르는 제국 안에 있으면서 헬레니즘-그리스문화에 영향을 받다가 로마제국이 기원전 63년에 다시 팔레스틴 땅을 정복함으로써 로마 제국에 속하게 된다. 이 때 팔레스틴 이외의 지역인 이집트, 아시아, 소아시아, 로마, 북아프리가 등 팔레스틴의 경계를 넘어서 흩어져 있는 불확정한 유대인들을 디아스포라 또는 분산 유대인이라고 했다. 로마 제국 안에서 헬라어 사용으로 히브리어나 아람어 사용이 줄어들자 70인역으로 알려진 구약-그리스어 번역본을 만들게 된다.
정치적으로 지중해의 전역은 통일된 로마제국의 영토였다. 해서 기독교의 확장에 기여된 부분도 있지만 종교 혼합주의, 황제 숭배로 기독교 박해의 한 원인이 되었다.
철학에서는 현상의 세계보다 완전하고 영원한 세계 즉 눈에 보이지 않고 순수한 이성의 세계와 영혼의 불멸성을 말한 플라톤과 그의 스승 소크라테스의 사상이 지배적이었다. 해서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통치의 선포를 플라톤의 이데아 세계에 대한 긍정으로 이해하게 되었고, 스토아 철학의 도덕주의가 기독교의 윤리에 영향을 주었다.
국가와 기독교의 갈등 때문에 순교자와 변증론자들이 나타났다. 또한 그들은 죽음으로 자신들의 믿음을 증거했다. 기독교인들의 박해에 앞선 왕은 바로 제국 이후 54-68년에 네로와 81-96년의 도미티안 황제였다. 2세기에는 트라얀 황제 98-117년 가 박해 정책으로 안디옥의 이그나타우스가 죽었다. 3세기에는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 193-211년 가 종교 혼합정책을 데키우스 황제 249-251년 는 신들 앞에서 제물을 바친다는 증명서를 소지하게 했다. 그리고 최악의 박해는 디오클레티안 황제 284-305년 였다. 경전의 훼파, 사형, 고문을 자행했다. 그 후 콘스탄틴 황제 306-337년 의 밀라노 칙령으로 박해는 끝났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