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창과 상평창
- 최초 등록일
- 2014.11.25
- 최종 저작일
- 20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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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진휼제도
2. 의창義倉
3. 상평창常平倉
본문내용
- 고구려의 진대법賑貸法이 고려시대까지 이어져 내려와 상평창常平倉·의창義倉 등으로 시행되었으며 조선시대에는 환곡還穀으로 시행
- 실질적 기능 : 재난·질병을 당한 사람들에게 쌀·소금·의복·간장 등의 생활필수품과 약품을 진대·진급하여 재난을 극복
- 정책적 기능 : 왕도정치王道政治의 실현이라는 형식적 기능. 정치·도덕적인 애민·휼민의 의지를 실천, 민심의 수습
→ 지배자로 하여금 사면을 행하게 하고, 기우제 등 각종 기도행사를 베풀게 하였던 것
<중 략>
① 인종 때 이자겸의 난·묘청의 난, 의종 때의 무신의 집권 등 국내의 정치적 혼란과 몽고 와의 전쟁 → 진휼기관의 운영을 어렵게 함
② 1/3의 이자가 인정되는 고려의 공사차대公私借貸 : 관리들이 부당하게 농민들로부터 이익을 취함
→ 무이식의 의창은 점차 그 기능을 상실
③ 충렬왕 22년(1296) 홍자번이 의창의 재설치를 건의
→ 이 때 이미 의창이 없어졌음, 또한 국가의 재정상태 상 의창의 운영이 어려움
④ 공민왕 ~ 우왕 : 지방관에 의해 의창이 일부 지역에 설치,
⑤ 공양왕 때 전국에 다시 의창이 설치 → 조선시대 의창의 기틀 마련
<중 략>
- 3년(1012) 서경이 지난해의 수재와 한재로 인하여 곡가가 등귀하여 백성들이 곤란하게 되었다며 소관 관청으로 하여금 창고를 열어 진휼하라는 지시를 내림
→ 의창인지 상평창인지 확실하지 않음. 상평창이 처음에는 물가조절 기구로 출발하였지 만 뒤에는 진대의 역할도 담당하였기 때문
- 5년 풍년이 들어 쌀값이 떨어져 거친베麤布 1필이 쌀 12말이나 되므로 그 값을 조절 하도록 삼사에서 건의하므로 이에 따름
참고 자료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탐구당, 2013
박용운, 『고려시대사』, 일지사,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