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녀의 기원과 조선 중기 기녀시조의 발생 배경
- 최초 등록일
- 2014.12.02
- 최종 저작일
- 20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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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기녀의 기원
Ⅲ. 고려시대 기녀제도와 작품
Ⅳ. 조선시대 기녀와 기녀시조
1. 조선시대 기녀제도
2. 조선중기 기녀시조의 발생 배경
3. 조선중기 기녀시조 주제
Ⅴ. 결론
Ⅵ. 참고문헌
본문내용
Ⅱ. 기녀의 발생
기녀의 기원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알기 어렵다. 구한말에 이능화는 『조선해어화사』에서 “원하는 오늘날 기생과 같은 것이고, 화랑은 오늘날 미동과 같은 것이고, 풍류낭도는 오늘날 외입장과 같은 것이다.” 라고 하였다. 기녀의 기원을 신라의 원화로 들었던 것이다. 또한 『삼국사기』에서 신라시대 김유신이 애마가 천관녀에게 가자 목을 베어버렸다는 일화가 나온다. 여기서 천관녀는 기녀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신라시대부터 기녀가 존재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고려사』에 언급된 양수척이라는 기록을 보자. 양수척은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 할 때 고려에 항거한 후백제인들로서 고려의 지배를 받는 것을 거부하고 여기 저기 수초처럼 떠돌았던 사람들이다. 양수척의 여인들을 이지영이라는 자가 기적에 올렸다고 나온다. 이 기록을 잘 보면 양수척의 여자들을 기적에 올리기 전, 자운선’과 같은 기녀, 그리고 기가가 존재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들로 미루어 볼 때 고려 이전에도 기녀들이 존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위의 기록들로 볼 때 기녀는 신라시대부터 존재해왔고, 고대 신분제 사회에서 피지배층의 여성 혹은 피정복민의 여성이 기녀와 같은 존재로 되었을 것은 추정할 수 있다.
Ⅲ. 고려시대 기녀제도와 작품
기녀의 기원은 신라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입증할 만한 자료가 충분하지 않다. 따라서 비교적 자료가 있는 고려시대의 기녀부터 알아보고자 한다.
고려시대의 기녀는 서울과 각 지방에 따라 기적을 두고 관리·운영되었다. 서울에는 교방이라고 하는 관설의 기관이 운영되었으며 여악의 예속처나 강습거주처를 두고 기녀에게 음악과 가무를 가르친 것으로 알려진다. 서울의 기녀가 교방에 소속되었다면 지방의 기녀는 각 지방의 관아에 소속되었다. 지방의 관기들 중에서 미모가 특출한 경우에 서울의 교방으로 뽑혀가기도 하였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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