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좌진장군에 대하여
- 최초 등록일
- 2015.01.25
- 최종 저작일
- 20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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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유년기(1889~1907)
2. 민족의식의 형성
3, 서울에서의 김좌진
4. 김좌진에 대한 역사적 평가
본문내용
1. 유년기(1889~1907)
김좌진은 충남 홍성에서 조선의 명문가 집안이자 혁명가 집안 김형규의 2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안동(安東), 자 명여(明汝), 호 백야(白冶), 김좌진은 3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편모슬하에서 성장하였다. 그의 집안은 많은 재산과 노비를 거느린 홍성 지역의 부호였고, 그의 조상들은 김상용, 김옥균, 김각균 등 조국을 위해 순절하고 조국을 구하기 위해 일어났던 혁명가들이었다. 김좌진은 부유한 명문대가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천성이 영민하고 공부보다는 전쟁놀이와 말 타기를 좋아 하였다. 인간 김좌진을 살펴보면 여러 자료에서 알려주듯이 영웅을 꿈꾸던 개구쟁이 소년, 강인한 힘을 지닌 소년, 그리고 그 속에 부드러운 마음을 지닌 소년이었다. 김좌진은 그의 한문사숙 시절 스승이었던 김광호와 김좌진과 같은 마을 출신으로 일찍이 개화사상을 가지고 있었던 김광호의 조카 김석범을 만나 그들로부터 큰 영향을 받고 이들로 인해 강한 민족의식을 갖게 되었다. 그는 15세 때인 1904년에 집안에 대대로 내려오던 노복 30여명을 모아놓고 그들 앞에서 종문서를 불에 태우고 농사를 지어먹고 살만한 논밭을 골고루 나누어 주었다. 이미 15세 때 가노(家奴)를 해방할 정도로 진취적 개화사상이 강하였다. 1905년 서울로 올라와 육군 무관학교에 입학하였다. 을사조약 체결 이후 국권회복의 신념을 가지고 애국지사들과 교류하며 국운을 바로잡을 것을 결심하였다.
<중 략>
2. 민족의식의 형성
-구한말 홍성지역의 상황:
그가 태어나고 자란 홍성지역 상황을 사회와 경제, 교육 두 부분으로 살펴보면 사회 경제면에 홍성은 여러 가지 좋지 못한 상황. 해상교통이 발달함에 따라 서해안교통의 중심지로 발전했지만 지배체제가 이완됨에 따라 수적, 화적 등의 활동이 빈번하게 나타나 홍성 주민들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었는데 이에 더해 지방관들의 수탈까지 계속되는 상황이었고, 교육 면에는 홍성지역엔 을사늑약 직후까지도 사립학교가 없었을 정도로 근대문물에 대해 보수적이었던 상황이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