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I. 허난설헌
1. 들어가며
2. 허난설헌의 생애
3. 허난설헌의 대표작
4. 마치며 : 허난설헌의 작품에 대한 평가
II. 황진이
1. 들어가며
2. 황진이의 생애와 당시 시대상황
3. 황진이의 대표작 : 주제에 따라서
4. 마치며
III. 신사임당
1. 들어가며
2. 사임당의 생애
3. 사임당의 시
4. 사임당 작품의 특징
5. 마치며
본문내용
1. 들어가며
허난설헌(許蘭雪軒 1563~1589)의 이름은 초희(楚姬)이고, 자는 경번당(景樊堂), 호가 난설헌이다. 아버지는 화담 서경덕의 문하에서 공부하고 경상감사를 지낸 허엽이고, 학문과 문장에 뛰어난 허성․허봉․허균이 그의 형제들이다. 뛰어난 여성 한시인이 조선 문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허균의 누이라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닐 것이다. <백옥루 상량문>이 난설헌 나이 8세 때의 작품으로 알려졌거니와, 이로 보면 27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허난설헌은 그의 생애 전부를 문학적 삶으로 일관했다고 말할 수 있다.
2. 허난설헌의 생애
1) 허난설헌의 유년시절과 가족
허난설헌은 1563년 (족종 18년) 에 출생하였다. 세상을 뜬 것은 1598년 (선조 22년) 3월로, 겨우 27세의 나이에 죽음을 맞이했다. 스물일곱이라는 너무나도 젊은 나이에 세상을 버린 것은 그가 조선이라는 세상과 정말 맞지 않는 사람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둘은 서로 용납할 수가 없었고 그 결과가 허난설헌의 죽음으로 나타났다.
허난설헌의 본관은 양천陽川이며, 원래의 이름, 아명은 허초희지만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자는 경번이고 호가 난설헌이다. 난설은 난초와 눈이다. 둘 다 세상 살기에 쉽지 않은 것들이다. 깨끗하고 서늘해야 존재하는 것들이니 허난설헌이 추구하는 정신세계를 말해주는 것일 터이다. 이들은 세상과 타협하지 않으면 오래 가기 어려운 것들이다. 그는 강원도 임영(강릉의 옛 지명) 초당리에서 태어났다. 지금도 강릉에는 초당두부가 유명하고, 그 아버지인 허엽의 호 또한 초당이었다. 오빠 봉과 동생 균도 이곳에서 출생했다. 지금도 생가 터가 선교장 가는 길 오른쪽에 남아있다. 그러나 자란 곳은 서울 건천동이라 한다.
오빠와 남동생, 그리고 난설헌까지 모두 재주가 남달라 글재주로는 내노라하는 집안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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