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
- 최초 등록일
- 2015.03.01
- 최종 저작일
- 20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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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존 스튜어트 밀의 생애
2. 자유론의 구성과 내용
3. 자유론의 현대적 의의
참고문헌
본문내용
1. 존 스튜어트 밀의 생애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1806~1873)은 19세기 영국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사상가 중 한 사람이다. 그는 18세기 영국의 경험주의와 20세기 논리경험주의 사이의 연장선상에서 극단적 경험론을 그의 철학에서 구성하였다.
그는 어려서부터 아버지로부터 엄격한 교육을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가 벤담주의 과정이라고 기술한 교육에 따르면 3세에 그리스어를, 8세에는 라틴어와 수학과 역사를 배웠고, 12세에 논리학과 경제학 이론, 형이상학과 윤리학을 배웠다고 한다. 그래서 10대에 이미 어엿한 지식인으로 성장해 있었다. 14세 때에 1년 남짓 프랑스에 가서 스포츠를 즐기고 자연을 벗 삼아 지낸 적이 있는데 이것은 그에게 일생에 걸친 취미가 되었다.
15세에 귀국한 밀은 벤담주의의 저작인 P. 뒤몽의 《입법론》을 읽은 적이 있는데 이것이 계기가 되어 공리주의 사상가가 되기로 결심하였다. 이후로 그는 벤담주의를 연구하기 위해 동지들과 공리주의자 협회를 결성하고 《모닝 크로나클》지와 《웨스트민스터 평론》지 등에 많은 기고를 하였다. 다음 해인 1823년에는 아버지가 근무하던 동인도회사에 입사하여 회사가 해산되기까지 35년간 근무하였다. 그러나 공리주의 사상 보급을 위한 활동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밀의 자서전에 의하면 그의 나이 스물 살 때 어떤 일에도 기쁨을 느끼지 못하고 공리주의적 개혁에도 열정을 가질 수 없게 되는 등 심한 신경쇠약에 걸리게 되었다. 이는 영국 사교계의 저급한 도덕 수준을 전혀 알지 못하고 고전파 경제학의 사익추구 개념을 너무나 성선설적인 것으로만 해석하고 있던 것에 대한 반성이었으므로 종래의 공리주의 사살을 수정할 필요를 통감하게 되었다. 그는 낭만주의의 계보에 서 있는 콜리지와 칼라일의 저작을 열심히 읽고 정치제도의 상대성과 역사성을 주장한 논리에 반면의 진리를 인정하게 되었으며 또한 프랑스의 생시몽파와 콩트 등과의 교류를 통하여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의 차이, 또는 사유재산제도와 이를 절대적인 것으로 전제하는 고전파 경제학의 한계를 깨닫게 되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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