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독립 운동사
- 최초 등록일
- 2015.05.13
- 최종 저작일
- 2015.05
- 5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목차
없음
본문내용
과거 동학농민운동에서 시작한일본의 국권침탈을 반대했던 항일의병운동은 많은 의병으로 이어지면서 독립운동으로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1895년 을미사변과 친일 내각에 의해 간행된 단발령을 계기로 전국에서 민족 저항운동이 일어나게되었고 을미의병이 일어나게된다.
을미의병은 위정척사 사상을 가진 유생층이 주도하였는데, 제천의 유인석∙ 서상렬, 춘천의 이소응, 이천 여주의 박준영, 선산의 허위, 강릉의 민용호, 홍주의 김복한, 산청의 곽종석,문경의 이강년, 전라도 장선의 기우만 ∙ 이춘영등이 주도하였고 당시 을미개혁을 추진하고있던 친일 관리들을 제거하게 된다. 을미의병을 일으킨 유생들은 개화사상이 서양 사상과 일본을 끌어들여 우리나라 전통 유교 윤리를 파괴하는 것으로 보았다.
<중 략>
1905년 일본에 의해 강압적으로 맺은 을사조약 이후 대한민국은 일본 식민지의 지배하에서 모두가 힘든 삶을 살고 있던 시기였다.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우리 민족은 조국을 되찾고자 하는 우리민족은 항일독립투쟁운동의 일환으로 의병운동과 민족계몽운동 등 각종 활동을 펼쳤다.
하지만 일본이 이를 가만 둘리 없었고, 일본은 헌병경찰제도를 실시해 독립운동을 펼쳤던 투사들을 옥에 가두고 학살하는 등 잔인한 행동을 펼쳤다. 교육정책에서도 우민화정책을 이용해 민족의식을 억누르도록 했다. 뿐만 아니라 토지, 광산, 철도, 금융 등 모든 분야의 이권을 독점하여 경제적 발전을 저해하고 막대한 이익을 가로채 갔는데, 때마침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독일의 패전으로 끝이 나게 되고, 1919년 미국의 윌슨 대통령이 ‘각 민족의 운명은 그 민족 스스로 결정한다’는 민족자결 주의의 원칙을 세웠다.
<중 략>
1919년에 일어난 3.1 운동은 온 민족이 국내외 각지에서 전개한 거족적이고 거국적인 독립 운동이었다. 이러한 3.1운동은 우리 민족의 역사는 물론이고, 세계사적으로도 큰 영향을 끼쳤는데, 첫째, 민족사적으로는 민족 구성원들에게 독립에 대한 강한 희망과 자신감을 심어 주었고, 우리 민족의 자주 독립 의지와 역랑을 전 세계에 알리는 절호의 기회가 되었다.
둘째, 3.1운동을 통해 독립 운동의 참여 주체와 기반이 확대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