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의 대한제국 선포
- 최초 등록일
- 2015.05.18
- 최종 저작일
- 20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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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역사와 문명 A+ 레포트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시모노세키 조약과 삼국간섭
2. 을미사변
3. 아관파천
4. 경운궁 환궁과 대한제국 선포
III. 결론
본문내용
평소에 역사에 관심이 많던 내가 우연히 보게 된 위의 사진은 나의 흥미를 끌었다. 고종은 조선의 마지막 왕이자 대한제국의 초대황제로써 역사와 전통의 산 증인이라 할 수 있다. 그런 그가 서양식 복장을 하고 외출을 하는 것은 꽤나 흥미로웠다. 이 사진 이외에도 고종이 서양의 문물을 접하거나 이용하는 기록은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는데, 이는 고종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이 관심으로 바뀌는 계기를 마련했다. 과연 고종은 어떤 인물이었을까? 고종처럼 후대의 역사적 평가가 극적으로 갈리는 인물도 흔치않다. 그마저도 ‘망국의 황제’와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가 대다수이다. 그에게는 아버지 흥선대원군과 아내 명성황후 사이의 ‘우유부단한 군주’라는 딱지가 주홍글씨처럼 새겨져 있다. 그가 무능하고 실패한 황제라는 것이다. 고종은 최근에 이르러서야 과도기적 개혁군주라는 새로운 평가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고종은 과연 구국의 군주인가? 아니면 망국의 황제인가? 고종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주제 중 하나가 바로 대한제국이다. 대한제국은 불과 15년도 되지 않는 짧은 기간 동안 존속했으나, 고종의 모든 것을 담고 있었다. 대한제국은 그 국호에서 드러나듯이 자주독립을 통해 세계 각국과 대등한 국가가 되려고 했다. 나아가 국제기구에 가입하고 국제회의에 참여하는 등 적극적으로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려고 했다. 그러나 대한제국은 자주독립을 수호하지 못한 채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고, 그 후 우리 민족은 식민지배라는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했다. 한편에서는 대한제국이 실은 외부의 충격에 대응한 그 이상의 것도 이하의 것도 아니며, 고종의 정치이념은 근대사회 건설에는 한계가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고종과 대한제국을 이처럼 무의미하게 이해하는 것은 일본이 만들어낸 식민사관의 부산물이다. 물론 식민사관을 공격하느라 대한제국의 어떤 점을 정당화하거나 미화해서는 안 되지만, 우리의 역사를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대한제국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따라서 본고는 고종과 대한제국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 대한제국 선포에 영향을 끼친 사건들을 살펴보고, 이러한 사건들과 국제정세 아래 고종과 대한제국이 국권을 지키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펼쳤는지 살피려한다.
참고 자료
강준만. 『한국 근대사 산책 2권』. 인물과 사상사. 2007
강준만. 『한국 근대사 산책 3권』. 인물과 사상사. 2007
국립고궁박물관. 『대한제국 잊혀진 100년 전의 황제국』. 민속원. 2011
이상각. 『이경 고종황제』. 추수밭. 2008
한국근현대사학회. 『한국 근대사 강의』. 한울 아카데미. 2008
한영우. 『명성황후와 대한제국』. 효형출판. 2001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citrain64&logNo=1001002318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