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호 이익의 사회·경제 개혁론
- 최초 등록일
- 2015.05.18
- 최종 저작일
- 20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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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근세사 A+ 레포트
목차
1. 머리말
2. 사회개혁론
ⅰ. 공정하고 엄격한 법의 집행
ⅱ. 올바른 인재의 등용
3. 경제개혁론
ⅰ. 농업만이 살 길
ⅱ. 한전법(限田法)에 의한 토지제도 개선
ⅲ. 상업과 돈에 대한 천대
4. 맺음말
본문내용
1. 머리말
역사는 마치 장난과도 같아서, 최고의 전성기를 달렸던 국가도 언젠가는 반드시 멸망하여 그 공허함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역사 속 어떤 국가도 이러한 틀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으며, 지금의 국가 또한 그러하지 않으란 법은 없다. 하지만 하락세를 걷고 있는 국가에는 반드시, 그 하락세를 극복할 만한 개혁의 시간이 주어지기 마련이다. 그 개혁의 시간을 잘 견디면 한 번의 위기를 현명하게 넘길 수도 반면, 나태한 대응은 그 하락세에 불을 붙일 수도 있다.
개혁을 시도하는 세력에는, 사회적 폐단 속에서 극도로 착취당한 하층민이 있는 반면, 사회의 주도세력이 되지 못한 지배층이 있다. 사실 태생적으로 ‘가진 자’의 위치에 섰던 지배층이 사회 개혁을 주도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애초에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었던 하층민과, 노력하기 이전부터 많은 것을 가지고 있었던 지배층은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처음부터 다르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목해볼만한 인물이 바로 성호 이익(星湖 李瀷, 1681~1763)이다.
성호 이익의 가문은 서울과 경기도에 기반을 둔 남인계의 관료집안이었다. 그는 여주 이씨였는데, 그의 집안은 학문적으로 유서 깊은 가문이었다. 이익은 이러한 가문 안에서 학자로 성장하기에 가장 적합한 조건을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가 중국으로 사행 갔다 돌아오며 사온 수천 권의 고서나, 논밭과 농장 그리고 노비를 갖추고 있던 경제력이 그러하다.
그의 가문은 갑술환국(1694)으로 남인들이 정권에서 완전히 축출되면서 몰락하기 시작했다. 당시의 정계는 노론과 소론의 무대였으며, 그가 스승으로 모셨던 형 이잠(李潛, 1660~1706)은 정쟁이 휩싸여 죽음을 당하기에 이르렀다. 참혹한 붕당의 실상을 목도한 이익은 이후에 벼슬길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은둔하여 학문에 몰두했다. 그가 벼슬길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학문에 전념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가진 경제력에서 기인한 것이지만, 그는 몸소 농사를 지으면서 서민들의 애환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이러한 경험은 그의 학문의 근간이 되었을 것이다.
참고 자료
강경원, 『이익(인간소외 극복의 실학자)』,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2002. 이익, 『星湖全書』.
원재린 a, 「성호 이익의 정치 개혁론」, 『민족과 문화』Vol.9, 한양대학교 민족학연구소, 1995, 267~281쪽.
원재린 b, 「성호 이익의 국가 개혁론과 그 사상적 특질」, 『태동고전연구』Vol.26, 한림대학교 태동고전연구소, 2010, 33~54쪽.
이성무, 「성호 이익의 생애와 사상」, 『조선시대사학보』Vol.3, 조선시대사학회, 1997, 97~12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