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지의 서천 과정속 지배세력의 변화/한의 동맹을 거절한 월지에 대한 고찰
- 최초 등록일
- 2015.06.04
- 최종 저작일
- 20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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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머리말 : 한의 동맹을 거절한 월지의 이유에 대한 문제 제기
Ⅱ. 본론 : 지배세력이 변화한 대월지
Ⅲ. 맺음말
본문내용
Ⅰ. 문제 제기
월지에 대한 한의 동맹 요구는 한 무제(武帝) 시기 흉노(匈奴)와의 전쟁 때 이루어진다. 이는 한과 흉노간의 전쟁 중에 한에게 투항해온 흉노인들이 무제에게 월지가 흉노와 원한 관계에 있음을 전달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사기(史記)-대원열전』에 기록되어 있다. 왜 한이 월지에게 동맹을 요청하였는가에 대한 것을 알기 위해서는 위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월지와 흉노의 원한 관계’로 거슬러 올라가야할 필요성이 있다.
묵특이 흉노의 태자로 있던 시절 월지국은 타림분지에 거주지를 두고 동서무역을 독점하여 흉노를 압박할 만큼 강세를 유지하고 있었고 이에 따라 흉노의 태자 묵특을 인질로 잡고 있었다. 그러나 흉노 역사상 위대한 선우로 추대 받게 되는 묵특이 선우로 등극하며 월지를 공격하였고 크게 패한 월지는 두 세력으로 나뉘어 한 세력은 서쪽으로 이동을 또 다른 세력은 원래 있던 곳에 남아 국가를 유지하게 되는데 전자를 ‘대월지’ 후자를 ‘소월지’라 부르게 된다. 이 후 묵특이 죽고 그의 아들인 계육(稽粥)이 노상선우로 등극하고도 월지에 대한 공격을 멈추지 않는데 이 공격 때 노상선우는 월지왕을 죽여 그의 두개골을 술잔으로 만들어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위와 같은 내용에서 드는 한 가지 의문점은 노상선우가 공격한 것이 서쪽으로 이동한 ‘대월지’인가 그렇지 않으면 터전을 이동하지 않은 ‘소월지’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노상선우 때까지 월지는 그 세력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고 이에 따라 노상선우가 공격한 대상은 하나의 월지였는가하는 것이다. 통상적으로 생각해본다면 노상선우가 공격한 것이 지리적으로 가까웠던 ‘소월지’ 혹은 세력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던 하나의 월지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러나 『사기(史記)-대원열전』에는 아래와 같이 적혀있다.
① 대월지는 왕이 일찍이 흉노에게 죽음을 당하였으므로 그의 태자를 세워 왕으로 하고 있었다.
② 대원 서쪽의 여러 나라들은 스스로 한나라와 멀리 떨어져 있다고 여겨, 여전히 교만하고 안일하게 굴었으므로, 한나라도 여전히 그들을 예로써 복종하게 하며, 속박하여 한나라를 섬기도록 할 수는 없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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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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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규,「한무제의 서역원정·봉선·황하치수와 우·서왕모신화」, 동양사학연구
http://www.cyworld.com/dodong04, 「월지의 서천을 둘러싸고, 새(塞)족의 허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