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직업 레포트
- 최초 등록일
- 2015.08.25
- 최종 저작일
- 20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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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교양과목 조선시대 사람들이란 과목에 레포트입니다
조선시대의 사회와 문화 중 한 부분으로 조선시대 여러 직업 가운데 오늘날의 변호사와 같은 역할을 햐였던
외지부에 대한 내용으로 그 시대 노예재판이 주를 이룹니다
목차
1.외지부란?
2.탄생배경
3.외지부의 어원 및 역할
4.사례: 윤선도의 법정 다툼
5.사진자료
본문내용
*외지부의 어원 및 역할
대언이 도관에 나가서 업무를 처리하는 것을 지부라고 부른 것에서 그 어원이 된다. 지금으로 치면 청와대 비서관이 각 부처에 파견을 나간 것과 같다. 여기서 대언은 왕명을 전달하는 관리로 후에 승지로 이름이 바뀌며 도관은 노비소송을 다루기 위해서 세워진 관청으로 훗날 장예원으로 이름이 바뀐다. 바깥에 지부라는 뜻으로 관청 밖에서 지부 행사를 했던 이들을 일컫는 말이다. 스스로를 외지부라고 칭했는지 아니면 다른 이들이 그렇게 불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실록》에 실릴 정도로 광범위하게 쓰였다. 정명섭, 『조선직업실록』 북로드 2014년 p.129
외지부라는 명칭이 처음 《조선왕조실록》에 쓰이기 시작 한 것은 성종이 즉위하기 직후인 15세기 후반이다.
외지부의 역할은 크게 네 가지로 구분되는데 첫째는 소송을 권장하였고 둘째는 소송을 대신해 주었으며 셋째는 해박한 법률지식을 바탕으로 법리논쟁을 주도하였다. 넷째로는 소장을 써주는 등 소송에 필요한 문기들을 작성해주었다. 또한 신분적으로는 중인, 하급관리, 대노 출신들이 주류를 이뤘다고 여겨지며 외지부(外知部)라고 불린 것으로 보아 주로 노비소송에 관여한 것으로 보인다. 외지부는 일반 백성에게는 고마운 존재이지만 조정 대신들에게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성종때에 외지부를 모두 붙잡아 가족들과 함께 변방으로 유배 보내기도 하고 연산군 시절에는 이들을 잡으면 포상한다는 정책이 시행 되었지만 1603년에도 외지부 노릇을 했던 관리가 처벌받은 기록이 있다.
참고 자료
정명섭, 『조선직업실록』 북로드 2014년
한상권 『조선시대 소송과 외지부(外知部): 1560년 「경주부결송입안」 분석』 한국역사연구회 200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