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인론 - 임화론
- 최초 등록일
- 2015.09.17
- 최종 저작일
- 20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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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생애
2. 초기시
3. 단편서사시
4. 감정시로의 전환
5. 광복 이후의 임화 시
6. 전선시
Ⅲ. 결론
본문내용
임화는 1920년에서 30년대 한국 사회주의 문학운동기에 활동한 시인이며 비평가였다. 또한 카프 후반기를 책임진 서기장으로서 프로문단을 실제로 주도한 인물이기도 하다.
월북한 시인이자, 카프에서 주도적 인물이었던 탓인지, 임화는 시문학사에 남긴 업적보다 평가 절하되었으며, 그에 대한 연구 또한 최근에서야 시작되었다. 그런데, 현재 존재하는 임화에 대한 비평자료들은 시인으로서의 임화에 대한 연구보다는 비평가로서의 임화, 카프의 주축으로서의 임화에 대한 연구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임화의 시에 대한 연구는 미비하다. 이에 따라, 우리는 임화의 시를 시기별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중 략>
임화가 시인으로서 사람들 사이에서 유명하게 된 계기는「네거리의 순이」, 「우리 오빠와 화로」, 「우산 받은 요꼬하마의 부두」, 등 소위 단편서사시 계열의 작품들을 발표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이 단편서사시는 임화 자신이 몸담고 있던 프로시단의 문제점을 타개하기 위해서 고안된 것이다. 1927년 발표된 대부분의 프로시는 시인의 세계관을 직접적으로 작품에 노출시키면서 자신이 주장하는 내용만을 덩그러니 내놓는 경우가 허다했다. 즉 이 당시의 프로시는 시의 양식적 특성이라는 측면에 대해서는 거의 고려하지 않은 채, 오직 그 내용의 선동 선전성과 작가가 가지고 있는 세계관의 정당성 여부만 문제 삼고 있었다. 이로 인해 점차 예술적 진실의 탈각, 대중성의 약화 등이 심각한 문제점으로 부각되기 시작한다.
<중 략>
이 시는 116행 19연의 긴 시로 서울로 다시 돌아온 임화의 감회가 드러나 있다. 이 시는「네거리의 순이」(1929), 「다시 네거리에서」(1935), 「구월십이일 - 또 다시 네거리에서」(1945) 등과 함께 이른바 네거리 계열의 마지막 작품(1950)이다.
이 시는 인민군이 서울로 진격한 전쟁 초반에 쓴 시기 때문에 전쟁의 승리에 대한 자신감이 묻어 있다. 그에게 있어서 전쟁은 그의 이데올로기의 승리이자, ‘흉악한 미제국주의/ 침략자의 발굽'에 있는 남조선 인민의 해방이기도 했다. 따라서 임화의 입장에서 서울은 ’나의 고향‘인 동시에 ’아름답고 수려한 우리들의 수도‘인 것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