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양해군과 청일전쟁 (표지 없음)
- 최초 등록일
- 2016.04.08
- 최종 저작일
- 20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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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머리말
2) 일본 해군의 상황
3) 청의 북양해군, 함대의 상황
4) 청일전쟁 개전과 북양함대의 분전. 궤멸
5) 결론
본문내용
1. 머리말
청일전쟁은 청과 일본의 전면전으로, 지난 날 수세기동안 중국에 조공을 바쳐왔던 일본이 아시아의 패권국가라 불리우던 청을 박살내고, 아시아의 신흥 강국으로 들어서는 계기가 되었다.
일본은 청나라를 굴복시키기 위하여 많은 준비와 국가 차원의 총력전, 전술의 풍부한 이해를 바탕으로 오랜 기간 청을 굴복시키기 위해 준비를 해왔고, 그 결과는 청일전쟁의 승리였다.
반면 청나라는 양무운동 당시 군제 개편으로 서양식 최신 군함과 질 좋은 장비를 갖춘 아시아 최강의 함대를 가졌지만, 병사들의 형편없는 질적 기량과 함대 개편에 필요한 자금을 중앙에서 횡령하는 비리도 있었고, 이어서 개전 당시 남양함대와 복건함대가 서로 보신을 위해 자리를 지키는 덕분에 해군의 전투는 이홍장의 북양함대와 일본 해군과 싸우는 기괴한 성격의 전투가 벌어지게 되었다.
고로 청일전쟁은 국가 간 총력전이 아니라 일개 군벌의 함대와 한 국가의 해군과 싸우는 장면이 연출되었고, 그럼에도 청군은 일본을 상대로 꽤나 고군분투하는 응전을 보여주었다.
이 레포트에서는 북양함대 및 청국 해군을 중심으로 청일전쟁 당시 일본 해군과 청국 해군의 비교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싸웠는지를 중점적으로 다루기로 하겠다.
2) 일본 해군의 상황
일본은 1868년 메이지 유신을 기점으로 전 국가의 근대적인 개편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졌다.
일본의 소설가 “시바 료타료”의 표현처럼 작은 소국의 개화기를 준비하는 과정 속에서 나온 것이다.
그 작은 근대적인 국가의 탄생과 더불어 근대적인 해군과 육군의 창설이 이어졌다.
당시 사쓰마와 초슈를 위시한 세력들이 정치권에 있었고, 군대 역시 그 영향권에 있었다.
따라서 해군 역시 사-초 출신의 인원들이 상당수 포진하게 된다.
특히 사쓰마 지역의 파벌이 상당히 우세했다고 전해진다.
후일 러일전쟁에서 일본 연합 함대의 사령장관이 되는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도 지난날 사쓰마 지역 다이묘 휘하의 무사였다.
이들은 해군을 창설하고 그것의 롤 모델을 영국으로 잡았는데 그 이유는 영국이 당시 최강의 해양 국가였기 때문이다.
참고 자료
일본 근현대사 시리즈3, “청일, 러일전쟁” 하라다 게이이치 저. 최석완 역, 어문학사
대망 34 “언덕 위의 구름 (1편) ” 시바 료타료 저. 박재희 역, 동서문화사
한림 신서 일본학 총서7 “청일전쟁” 후지무라 미치오 저. 허남린 역, 소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