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정, 고난과 역경(표지 없음)
- 최초 등록일
- 2016.04.08
- 최종 저작일
- 20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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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대장정, 시작의 배경
2. 고난의 행군
3. 결과 및 의의
4. 맺음말
본문내용
대장정, 시작의 배경
1911년 신해혁명 이후로 중국은 현대판 춘추전국시대인 군웅할거의 난세였다.
1920년대 중반. 온갖 군벌의 난립체로 된 중국을 손문의 국민혁명이라는 슬로건 아래, 국민당을 창당하고, 대륙을 국민당 중심으로 바꾸려 했던 장개석이 등장했다.
그리고 막 피어난 꽃같이 확대되어 점차 퍼져갔던 공산당, 한때 국공 합작을 하기도 하였으나, 무서운 세력 확충을 꾀하던 공산당은 장개석의 무자비한 토벌로 점차 짓밟혔다.
그리고 걸출한 지도자 모택동. 그는 서금 지역에 기반을 잡고 서금 소비에트 임시정부를 설치하고, 농민중심의 계몽 및 공산당 관련 정치 운동을 실시하고, 이 공산주의 운동은 기타 각 지방에도 널리 퍼지기 시작한다.
국민당은 1927년 4.12 쿠데타를 기점으로 공산당의 완벽 분쇄를 기했으나, 공산당의 세력은 점차 커져갔고, 규모가 커지는 공산당 궤멸을 위해 수차례에 걸친 포위 토벌로 공산당을 압박했다.
그러나 공산당의 홍군은 우세한 국민당에 맞서 게릴라 전법으로 괴롭혔고, 국민당의 무기와 식량 등을 항상 노획하며, 국민당을 골탕 먹였다.
장개석은 이에 맞서 독일식 포위망과 방어중심의 전략 및 주민의 강제 이동 조치으로 공산당의 보급을 끊으려 시도했다.
국민당의 전술은 잠깐이나마 공격에서 방어로 전환되었으나, 되려 공산당은 기존의 게릴라전 방식을 파기, 코민테른의 지령과 코민테른에서 파견한 이덕(독일인 오토 브라운) 및 극좌노선의 방식에 의해, 농촌에 안주하기보다는 도시를 장악하여 도시의 노동자들과 합세하여 강력한 전쟁을 펼치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그러나 우세한 적에 게릴라 방식으로 맞서 대등한 전투력을 유지하던 홍군은 1934년 연초부터 시작된 국민당 정권의 토벌에 기존의 게릴라전이 아닌 정면 전투를 펼친 결과, 궤멸적 타격을 입고 말았다.
정면 전투의 여파로 각 지방의 해방구의 상당량을 국민당이 탈환했고, 강서성의 서금 소비에트를 위시한 몇 지역만이 남았고, 그마저도 국민당의 포위망에 갇히는 형국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국민당의 포위에 점차 굶주려갔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