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난설헌
- 최초 등록일
- 2016.07.19
- 최종 저작일
- 20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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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 론
Ⅱ. 본 론
① 허난설헌의 생애
② 허난설헌의 문학세계
③ 허난설헌의 작품
Ⅲ. 결 론
Ⅳ.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서 론
조선 건국 이후, 사대부를 중심으로 조선은 유교를 최고의 이념으로 받아들이고 성리학 체제 아래 사회가 형성되었다. 조선 중기, 가부장 중심의 가족관계를 중요시 하는 유교적 가치관이 확립되면서 여성들이 사회적으로 설 자리를 잃었다. 정계 진출을 위한 교육은 남성만 받을 수 있었고 여성들은 집에서 자식을 낳아 기르고 집안의 가사를 전담하는 역할이 되었으며 정치활동, 경제활동, 사회활동은 제한되었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여성들이 소설을 쓰고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었다. 더욱이 자신의 이름으로 글을 쓴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사회적으로 조금 더 자유롭고 끼를 뽐내는 직업을 가진 황진이 같은 기녀는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지만 사대부가의 여성은 아내로서 내조를 잘하여 남편을 관직에 오르게 하고 자식을 잘 길러 출세시키는 현모양처의 자세가 요구되었다. 허난설헌이 주목받는 점은 여기에 있다. 성리학 체제가 확립되어 가는 시기에 사대부가 출신 여성이 시를 써서 자신의 능력으로 이름을 널리 알린 점이다. 수업시간에 교수님께서 잠깐 말씀해주셨을 때 허난설헌에 대해 흥미가 생겼다. 가부장 중심의 엄격한 유교사회인 조선에서 오로지 자신의 시로 이름을 알린 비운의 천재 여류시인 허난설헌, 그녀가 작품을 통해 하고자 했던 메시지가 무엇인자 알고 싶었다. 본론을 통해 그녀의 생애와 문학세계, 그녀의 작품을 구체적으로 알아보고자 한다.
Ⅱ. 본 론
① 허난설헌의 생애
허난설헌은 1563년 조선중기 문신인 허엽의 딸로 태어났다. 양천 허씨이며 어렸을 때 이름은 초희였고, 다른 이름은 옥혜였다. 난설헌 또는 난설재는 그녀의 호이다. 허난설헌의 아버지인 허엽은 동인 중에서도 북인 쪽 인물로 북인들은 대개 그 사상의 바탕이 성리학 이념 하나만을 고집하지 않고 비교적 다양한 분야를 수용하는 넓은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의 집안은 당대 여타 사대부 가문에 비해 여성에게 관대하였고 대대로 글과 글씨가 유명한 명문 집안이었다. 허엽 가문의 학문에 대한 열린 가풍은 딸 허난설헌에게도 그의 오빠들과 함께 교육받을 수 있도록 하였다.
참고 자료
김명희, (2013년 8월 22일), 「허난설헌의 시문학」, 국학자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