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김기림 바다와 나비 발표문입니다.
목차
1. 작가 소개
2. 모더니즘
3. 구인회와 조선문학가동맹
4. 작품해석
5. ‘바다’와 ‘나비’의 상징성
6. 김기림 문학의 위치
본문내용
1. 작가 소개
1908년(1세) 5월 11일 함경북도 학성군 학중면 임명동에서 지주였던 김병연의 6녀 1남 중 장남으로 태어남 아명은 인손이며 편석천이라는 호도 지어주다.
1914년(7세) 4월에 임명보통학교에 입학, 어머니가 장질부사로 일찍 돌아가시게 되어 계모를 맞이하게 되다.
1918(11세) 임명보통학교를 졸업 백부의 주선으로 한학자를 초빙 한문을 배우다. 어린 나이에 19세의 나주 김씨와 첫 번째 결혼을 하다.
1921년(14세) 서울 보성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다가 휴학, 1925년 일본 도쿄에 있는 메이쿄 중학 4학년에 편입. 1926년 니혼 대학 전문부 문과에 입학하다.
1929년(22세) 니혼대학 전문부를 졸업, 입사시험을 치러 조선일보사 사회부 기자로 취직하다.
1930년(23세) 시 「가거라 새로운 생활로」를 『조선일보』에 발표하는 것을 시작으로 이후 신문과 잡지에 시와 평론, 희곡, 수필 등을 활발하게 발표하다. 이월녀와 결혼하지만 이혼하게 되며, 1932년 신보금과 중매결혼을 하여 장남 세환이 출생한다.
1933년(26세) 이종명, 김유영, 이태준, 이무영, 정지용, 유치진, 조용만 등과 ‘구인회’를 조직, 활동하였으며, 이 시기에 박태원, 이상 등과 문학적인 만남을 시작하다.
1936년(29세) 동인지인 『시와 소설』을 발간, 조선일보사를 휴직, 신문사의 지원을 받아 도호쿠 제국대학 영문과에 입학, 7월에 첫 번째 시집 『기상도』가 창문사에서 간행되다.
1939년 (32세) 도호쿠제국대학 영문과를 졸업하고 다시 신문사에 사회부장으로 복직, 부인과 가족을 고향인 임명동에서 종로구 충신동으로 이주시키다.
1940년(33세) 『조선일보』가 폐간되자 고향으로 내려와 1941년부터 1044년까지 고향 부근 경성 중학에서 영어와 수학을 가르치다.
1945년(38세) 해방이 되자 장남을 데리고 서울로 올라와서 종로구 이화동에 집을 구하여 살다. 이때부터 1950년 한국전쟁 직전까지 서울대학교 사범대, 중앙대, 연세대 등에서 시와 문학을 강의하다.
참고 자료
장석주, 20세기 한국 문학의 탐험, 1900~1934. (시공사, 2007)
김윤정, 김기림과 그의 세계, (푸른사상, 2005)
근대문학 100년 연구총서 편찬위원회, 약전으로 읽는 문학사1, (근대문학. 100년. 총서02, 소명출판, 2008)
강상원 외, 해법문학 현대시, (11종 문학 참고도서, 천재교육, 2014)
박태상 주해, 원본 김기림 시 전집, (깊은샘, 2014)
김학동, 김기림 평전 (새문사,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