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본 연구는 『화랑세기』를 통해 '도덕적'이고 '순국적'인 '무사 집단' 이미지를 하나하나 반박하고 새롭게 바꾸고자 한다.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무사 집단'으로서의 화랑도
2. '순국적'인 화랑도
3. '도덕적'인 화랑도
Ⅲ. 결론
Ⅳ.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서론
한국인들에게 '화랑도'는 낯선 개념이 아니다.
'신라 삼국통일의 원동력이 된 청소년 집단' 이라는 교과서적인 한 줄 상식은 기본이며, 관창의 용맹함과 사다함의 우정은 전래동화처럼 입에서 오르내리고 있다.
게다가 최근「선덕여왕」이라는 드라마가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화랑도'는 전에 없는 대중적인 관심을 누리게 되었다.
그렇다면 대중들이 가지고 있는 화랑도의 이미지는 어떠한가.
우선 '무인 집단'이라는 이미지가 가장 먼저 떠올릴 것이다.
실제로 화랑도가 개편되고 조직화 된 시기는 진흥왕대로 신라가 대외팽창을 시작할 때였고 화랑도는 신라의 삼국통일 과정에서 많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드라마「선덕여왕」을 보더라도 등장하는 화랑은 모두 군사 훈련을 받고 있고, 늘 무장을 한 상태였다.
그리고 이런 '무인'들은 모두 나라를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는 '순국 청년'들이었다.
나라에서 조직한 단체이므로 당연할 것이다. 게다가 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룬 원동력이 화랑도라고 국사 교과서에도 나와 있다.
그렇다면 인간으로서의 화랑도는 어떤 이미지일까. 원광 대사의 세속 오계를 삶의 지침으로 삼아 마음을 수양하는 건전한 청소년 집단이 떠오를 것이다.
낭도들과 곡식을 모아 효녀 지은을 도와준 효종랑의 이야기를 보아도 그들은 '착하다.'
화랑 한두 명으로 화랑도 전체를 언급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대중들이 '이미지'를 갖기에는 충분하다.
이런 화랑도의 이미지를 종합한다면 '도덕적인 순국 무사 집단' 이라 할 수 있다. 나라에게 충성하는 용맹스러운 무사들이며 인격적으로도 도덕적인, 결점이 없는 청년 집단이라는 말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긍할 것이다.
그럼 이런 무사 집단으로서의 화랑도 이미지는 어떻게 만들어 진 것일까. 지금까지 화랑도에 대한 연구는 한국과 일본 모두 다양하게 전개되었으나 한 가지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화랑도를 무사정신과 전사단으로서의 성격에만 주목해 왔다는 사실이다.
먼저 일본인 사학자 이케우치 히로시는 1929년에 『삼국사기』47, 열전 7에 그 시대의 충신․의사라 칭찬할 만한 인물 십 수 인의 전을 세웠다는 기록에 주목해 신라인의 무사정신에 대해 이야기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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