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페너의 '경건한 열망' 연구 - 『경건한 열망』에 나타난 교회 개혁을 위한 제안들의 한국 교회로의 적용
- 최초 등록일
- 2017.03.27
- 최종 저작일
- 20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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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장로회신학대학교 세계교회사 서원모교수님 수업 기말 소논문입니다.
슈페너의 경건한 열망에 나오는 교회 개혁 제안들을 한국 교회에 적용하여 연구한 내용입니다.
목차
Ⅰ. 서 론
Ⅱ. 본론
1. 역사적, 사상적 배경
1) 경건주의 발생 배경
2) 경건주의 운동의 발생
3) 『경건한 열망』과 21세기 한국교회
2. 17세기 독일 교회와 21세기 한국 교회의 문제점 비교
1) 시 당국의 문제점
2) 성직자의 문제점
3) 시민들의 문제점
3. 교회 개혁의 가능성과 초대교회
4. 교회 개혁을 위한 제안들과 적용
1) 『경건한 열망』에 나타난 교회 개혁을 위한 제안들
2) 한국 교회로의 적용
Ⅲ. 본론
Ⅳ. 참고 문헌
본문내용
1517년 루터에 의해 중세시대를 거치면서 복음을 잃고 세속 권력과 뒤엉켜 심하게 타락해버린 가톨릭교회에 대한 종교개혁 운동이 일어났다. 루터는 ‘이신칭의’를 외치며 가톨릭에 대대적인 개혁을 외쳤지만 결국 개신교회와 분열로 끝이 났다. 당시 가톨릭은 온건한 회복운동으로는 도저히 감당이 안 될 정도로 교리부터 교회 체제 등 교회와 사회 전면에 걸쳐 심각하게 부패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큰 진통을 겪긴 했지만 종교개혁 이후 기독교는 진정한 복음을 되찾았다. 하지만 약 1세기가 지나면서 기독교에는 또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종교개혁 시기부터 국가 권력과 협력하였던 교회는 정치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교회는 제후들의 통치권 내에서 국가교회의 성격을 띠게 되었고 성직자들은 국가기관에서 일하는 공무원과 같이 되었다. 제후들은 감독회의를 통해 교회에 지배권을 행사하였다. 성직자들을 감독하는 감독들을 제후들이 임명한 것이었다. 이런 환경 아래 성직자들은 제 역할을 감당하지 못했다. 제후들이 명목상 기독교인이 많았으므로 그들의 삶은 경건과는 거리가 멀었음에도 불구하고 성직자들은 이들에게 올바른 말씀을 선포할 수 없었고 오히려 이들을 옹호하며 아부하였다. 하나님의 공의를 선포해야 할 성직자들이 세상 공직자들과 다를 바 없는 아첨꾼이 된 것이다. 사회적 상황도 심각했다. 30년 전쟁을 치르면서 독일의 농민들은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린 반면 제후들과 귀족들은 여전히 화려하고 문란한 생활을 즐겼다. 이런 빈부격차에 의한 계급화 현상은 교회 내에도 침투하였고 이들을 영적으로 채워져야 할 교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사회전체의 도덕성은 바닥까지 추락하였다. 술 취함과 방탕함이 사회에 만연하였고 사람들의 삶은 영적으로 육적으로 피폐해져갔다. 신학적으로도 문제가 있었다. 계몽주의의 침투 속에 17세기 정통주의자들은 중세시대 스콜라주의 신학자들처럼 철학적 사변에 집중하면서 신학의 경색을 가져왔다. 말씀 자체보다 신학적 사상 정리에 주력한 것이다. ‘이신칭의’교리도 확대해석 되면서 복음에 대한 지적 동의가 중요하게 여겨졌다.
참고 자료
Spener, P. J., PIA DESIDERIA, 모수환 옮김, 『경건한 열망』. 서울: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1988.
권오국, "17세기 독일 경건주의 교회관을 통해서 본 21세기 한국교회의 개혁방안 모색 - 스페너(P. J. Spener)의 『경건한 열망』(PIA DESIDERIA)을 중심으로". 서울: 장로회신학대학교,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