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과 광무개혁, 민중의 저항
- 최초 등록일
- 2017.05.09
- 최종 저작일
- 20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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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대한제국과 광무개혁
1. 개념정리
2. 배경
3. 전개
Ⅱ. 대한제국기 민중의 저항
1. 애국 계몽 운동
2. 항일 의열 항쟁 · 의병 항쟁
3. 경제적 구국 운동
본문내용
1. 개념정리
- 대한제국의 시기 : 1897년 10월 12일 ~ 1910년 8월 29일
- 대한제국(大韓帝國) 의 어원 : 삼한정통론
- 연호의 변화 : 건양(을미개혁) → 광무(대한제국) ∴광무개혁
2. 배경
국내 : 아관파천(1896) 이후 열강 이권 침탈 & 러시아의 내정간섭 심화
⇒ 고종의 환궁 여론 ↑ (민중+독립협회+유생 모두 요구)
국외 : 일본과 러시아의 세력이 균등하게 유지됨
3. 전개
- 고종이 덕수궁(당시에는 경운궁)으로 환궁
- 대한제국 수립을 선포(1897.10) : 국호 ‘대한제국’, 연호 ‘광무’, 황제 즉위식 거행(in 1) 환구단 :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드리는 제단을 가리킴. 환구단 또는 원구단으로 혼용. 한자 표기는 《고종실록》에 기록된 '圜丘壇'으로, 한글 표기는 고종이 제사를 지낸 1897년 10월 당시 《독립신문》을 따라 '환구단'으로 정함. 황제를 상징하는 건물.
<중 략>
a. 의열 항쟁
1. 1905년
- 민영환 : 여흥 민씨, 2차 한·일 협약 이후 자결을 통해 의열 항쟁
- 오적암살단 : 을사 오적(을사늑약 체결에 서명한 대신 이완용, 이근택, 이지용, 박제순, 권중현)
의 처단을 목적으로 조직, 나철과 오기호 등이 조직
2. 1907년
- 박승환 : 광무개혁 때 시위대 제1대 대대장으로 한·일 신협약 이후 군대해산의 부당함에 맞서 자결
의의 → 해산 군인들이 반일 의병운동에 참여하게 되는 직접적 계기
→ 의병운동을 전국적인 국민적 대중운동으로 확산시켜 간 기폭제
3. 1908년
- 전명운, 장인환의 스티븐스 사살(08) : 스티븐스는 1차 한·일 협약에 의해 외교고문이 된 인물
샌프란시스코에서 사살
4. 1909년
- 이재명의 이완용 피습 : 명동성당에서 이완용이 나올 때 칼로 찔러 피습함, 실패
- 안중근의 이토히로부미 사살
: 만주의 하얼빈은 당시 러시아 관할로, 이토가 만주 철도 부설권 등 만주 문제와 한반도 병합 문제를 의논하기 위해 러시아 재무대신 코코프초프와 만나기로 되어 있었음.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