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후예들-비잔티움,이슬람,서유럽
- 최초 등록일
- 2017.07.23
- 최종 저작일
- 20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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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비잔티움 제국은 어떻게 거의 1000년을 살아남았는가?
2. 안정의 원인
3. 비잔티움 종교
4. 비잔티움 문화
5. 비잔티움과 서유럽 그리스도교 세계
본문내용
1. 비잔티움 제국은 어떻게 거의 1000년을 살아남았는가?
⚬ 비잔티움 역사의 출발 시점을 정확하게 말하기는 불가능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동방화 정책과 더불어 비잔티움적인 특징이 나타났다는 주장과 콘스탄티누스가 수도를 로마에서 콘스탄티노풀로 옮긴 때부터 비잔티움의 역사가 시작되었다는 주장.
유스티니아누스는 스스로를 아우구스투스의 후계자로 자처, 서로마 지역 탈환위해 분투유스티니아누스 치세는 비잔티움 문명의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
그의 치세에는 로마적이라기보다 비잔티움적이라 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사상과 예술이 구현됨.
⚬ 610년. 비잔티움 역사의 출발점
이 시점부터 1071년까지 비잔티움 군사사, 정치사의 동향이 동쪽으로부터의 부단한 침입에 대한 항거로 특징지어짐.
⚬ 717년 아랍인의 콘스탄티노플 정복 위협
비잔티움의 운명은 다시 내리막길을 걸었으나 레오 3세의 반격으로 극복됨.
⚬ 11세기 셀주크투르쿠족
1071년 셀주크족은 소아시아의 만치케르트에서 비잔티움 군대를 전멸시키고 비잔티움 동부지역을 압도함.
이로 인해 콘스탄티노플은 헤라클리우스나 레오 3세 시대와 비슷한 처지로 돌아감.
비잔티움은 그 후 400년 동안 대체로 수세에 몰려 근근이 버텼지만 1453년 오스만 투르크족의 지배하에 들어감.
투르크족은 지금도 콘스탄티노플을 계속 지배하고 있음.(그들은 이 도시의 이름을 이스탄불로 바꿈)
2. 안정의 원인
⚬ 효율적 관료제
학식 있는 관료가 교육과 종교를 감독했으며 모든 형태의 경제활동을 통할함.
콘스탄티노플의 제국 관료는 물가와 임금을 규제 했으며 면허 제도를 관할했고 수출을 통제했으며 안식일의 준수를 강제함.
전차 경주마저도 엄격한 정부 관리 아래 있었음.
콘스탄티노플 주민은 정부의 명령에 의해 특정 팀을 응원하도록 할당됨.
육군과 해군, 궁정 ,외교를 관료적 방식으로 규제.
그 덕분에 이들 분야는 당시로서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으리만큼 강한 조직력을 갖춤.
⚬ 11세기까지는 국가의 경제기반이 비교적 건전했다
비잔티움 동유럽에서는 고대 말기와 마찬가지로 상업과 도시가 계속 번영함.
9세기와 10세기의 콘스탄티노플은 극동의 사치품과 서유럽의 원료를 거래하는 중요한 상업 중심지.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