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 속의 한국현대사> 비평문
- 최초 등록일
- 2017.10.23
- 최종 저작일
- 20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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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3·1운동 이후에 서구 문화는 일제에 의해 선별적으로 수용되었다. 그마저도 개화기 때 이미 수입되었던 것들이다. 일제 강점기 때 서구 문물의 수용에 큰 역할을 한 것은 서구 영화였다. 영화는 현대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로 문화적 상호작용의 중요한 매개체이다. 다만 현대의 경우 해외여행이나 물품 수출입, 인터넷을 통한 소통 등 영화보다 비교적 직접적인 문물 수용 방식이 존재한다는 차이가 있다. 여하튼 조선인들은 서구 영화에 등장한 의상이나 장신구, 서구 음악, 커피 등을 모방하여 향유했다. 당시의 대표적인 영화관으로 조선인 소유의 ‘단성사(團成社)’를 들 수 있다. 특이한 것은 조선인들이 일본 문명을 서구 문명의 아류로 인식하여 일본 영화를 상영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서구 영화 이외에 미국 등지에서 온 선교사와 미션 스쿨도 조선의 서구 문물 수용에 이바지했다. 아울러 소위 ‘모던 보이, 모던 걸’로 불렸던 자본가의 자녀와 카페의 웨이트리스는 서구 문물의 수용을 선도했다. 현대 사회에서도 경제적으로 우위에 있는 계층의 사람들이 해외의 값비싼 유명 상품을 주로 소비한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과거나 현재나 유행을 선도하는 것은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다.
주거 방식에 대해 말하자면, 대공황 이전의 조선인들은 대부분 초가집에 거주했다. 대도시의 일부는 도시형 한옥에서 거주하기도 했으며, 또 일부는 도시의 외곽에서 토막집을 짓고 살았다. 현대인들이 대부분 고층 아파트나 주택 등에 거주하는 것과는 상반된다. 하지만 오늘날 도심과 외곽 지역 간의 빈부격차는 조선시대와 마찬가지로 주거 형태로 표출된다. 이는 강남과 강북의 집값만 비교해 보더라도 쉽게 알 수 있다. 한편 대공황 이전의 일제 강점기는 서구 문물이 막 유입된 시기였다. 때문에 조선 복장과 서구 복장이 혼합되어 존재하기도 했으나 대다수는 흰 무명이나 비단으로 된 한복을 입었다. 오늘날에는 대다수가 서구 복장을 주로 입는다는 점과 상반된다. 한편 조선인들은 쌀과 맥류 혹은 쌀, 보리, 잡곡을 주식으로 했으며 야채와 된장, 계란과 물고기 등을 부식으로 섭취했다. 이 음식들은 현대에도 여전히 많이 소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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