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대혁명
- 최초 등록일
- 2018.01.23
- 최종 저작일
- 20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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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머리말
Ⅱ 본문
1. 혁명의 발단
2. 프랑스 혁명의 제 1단계
3. 프랑스의 제1공화정
Ⅲ 결과 (의의)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머리말
1789년 7월 14일 바스티유 함락에서 1799년 11월 9일 나폴레옹 쿠데타가 일어나기까지의 10년 동안 프랑스대혁명이 진행되었다.
프랑스 혁명가들은 아메리카 혁명가들과 같이 계몽사상 시대의 정치사상에서 영감을 얻었지만 아메리카 혁명보다 더 과격하게 혁명을 일으켰다.
프랑스 혁명 지도층은 앙시앵레짐을 청산하고 근본적으로 새로운 정치·사회·문화적 구조로 대체하고자 했다. 공화정이 공포정치로 일관하다가 총재정부로 바뀌고 결국 나폴레옹의 쿠데타로 무너지지만 프랑스대혁명은 근대사의 출발점이며, 프랑스대혁명의 이념이었던 자유·평등·박애는 여전히 민주주의 체제의 기본이 되고 있다.
이 레포트에서는 프랑스대혁명의 원인과 진행과정을 살펴보고 프랑스 대혁명의 영향에 대해서 이야기할 것이다.
Ⅱ 본문
1. 혁명의 발단
프랑스대혁명의 근본적인 원인은 구체제 하의 사회적 모순이었다. 프랑스 사회신분은 여전히 특권층과 비특권층으로 구분되어있었다.
제1신분에 해당하는 성직자는 총 인구의 0.5%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가장 영예롭고, 조직적이고, 국가적 부담이 가장 적으면서 가장 부유한 신분이었다.
제2신분에 해당하는 귀족은 총 인구의 1.1%~1.5%정도였으며 혈통귀족과 법복귀족이 있었다. 이렇게 특권층인 제1·2신분이 국가의 반 이상의 토지를 소유했고, 방대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거의 모든 과세를 면제받았다. 비특권층인 제3신분은 프랑스 전체 인구의 98%였는데 상층 부르주아지, 소부르주아지, 농민 같은 다양한 계층으로 구성되었다.
상층부르주아지는 상업활동이나 금융활동으로 부를 획득하여 웅장한 저택과 성, 또는 호화별장에서 지내면서 문화나 문예를 즐기고 살았다.
소부르주아지는 동업조합체제를 형성하여 독점 형태의 이윤으로 살아가는 계층이었다.
제3신분 중 농민층은 전 인구의 전인구의 2/3정도였음에도 40~45%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고 교회에 십일조를 내고, 직접세와 간접세를 내고, 도로부역을 부담했으며 영주는 여전히 봉건적 공납을 요구하는 등 착취를 당하고 있었다. 특히 경제력을 강화한 부르주아지는 경제 뿐 만아니라 다른 영역에서도 주역이 되기를 원했고 이로 인해 귀족과 충돌이 일어나기도 했다.
참고 자료
박인효. 프랑스 문화와 예술 131-140. 조선대학교 출판부
차하순. 서양사 총론2 688-712. 탐구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