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보 - 변혁
- 최초 등록일
- 2018.05.31
- 최종 저작일
- 20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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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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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이규보는 고려시대 인물로 자는 춘경(春卿), 호는 백운거사(白雲居士), 시호는 문순(文順)이다. 만년(晩年)에는 삼혹호선생(三酷好先生)이라고 불렸는데 그 이유는 시, 거문고, 술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는 문(文)에 대한 재능이 뛰어났다. 14세 때 성명재(誠明齋)의 하과(夏課)에서 시를 빨리 지었는데 그로 인해 선배 문사로부터 기재(奇才)라 불리었다. 과시의 글(科擧之文) 과 같은 것을 멸시하였는데 이는 사마시(司馬試)에 연속 낙방하는 요인이 되었다. 또 죽림칠현(또는 죽림고회 또는 해좌칠현)이라 불리는 모임에 참여하였고 1189년(명종 19)에 유공권(柳公權)이 좌수(座首)가 되어 실시한 사마시에 네 번째 응시해 수석으로 합격하였다. 다음 해 예부시(禮部試)에서 동진사(同進士)로 급제하였지만 관직을 받지 못하였다. 그래서 그는 개경의 천마산(天磨山)에 들어가 시문을 짓는 등 세상을 관조하며 지냈다. 백운거사라는 호는 이 시기에 지은 것이었다.
참고 자료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