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경제사3(조선 전기)
- 최초 등록일
- 2018.10.19
- 최종 저작일
- 20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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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군현제도와 그 정비
2. 면리제의 등장
3. 지방관
4. 지방향촌기구
5. 농민
본문내용
전통사회의 지방을 통제하는 방법에는 군현제와 봉건제의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이 중 조선시대는 군현제를 채택하고 개편하게 되었다. 조선시대 군현제도의 특징은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8도체제이다. 둘째, 수령을 파견한 주군현 체제이다. 셋째, 군현의 하부구조로써 면리제이다. 이 군현제는 1894년 갑오개혁 때까지는 골격이 유지되지만, 내용은 변한다. 특히 면리제가 세분화되는 양상을 보인다.
군현제의 첫 번째 특징인 8도 체제는 위화도 회군 이후 정비되기 시작된다. 이때 도의 장관의 명칭이 자주 바뀌는 등 불안정한 모습을 보인다. 경기도를 제외한 7도의 이름은 계수관의 이름을 합한 것이다. 태종 14년에 경기 좌, 우도를 경기도로 합하면서 8도 체제의 정비가 완료되었다.
고려시대의 5도는 경계가 불분명하였다. 따라서 계수관을 중심으로 통치되었다. 반면 조선시대에는 8도가 확립되며 계수관의 권한과 행정기능이 약화되었다. 계수관의 기능이 유지되는 경우는 군사제도인 진관체제 하에서였다. 진관체제는 자기 고을을 자기가 지키는 제도로 보다 큰 고을인 진관으로 모여서 공동방어를 하는 것이다. 이후 진관체제가 무너지며 제승방략체제로 변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모든 고을에 수령을 파견하였다. 고려 예종 때부터 조선 태종까지 지방관인 감무를 계속 파견한다. 전라도는 과거부터 왜구의 피해가 많아 먼저 군현을 개편하여 속군현을 정리하였다. 속군현을 정리하는 방법은 4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치수로 지방관이 없는 군현에 지방관을 파견하는 것이다. 두 번째 병합은 고을을 합치는 것으로, 단독적으로 성립할 수 없는 고을에는 2개 이상의 고을을 합쳐 하나의 고을로 만드는 방법이다. 이 방법에 있어서는 토착세력의 반발이 있었다. 병합의 경우 한쪽으로 읍사가 합쳐지기 때문에 각 속군현에 존재하는 읍사를 지배하는 세력들의 반발이 심했다. 따라서 병합됐다가 해체되고 다시 병합되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세 번째는 이속이다. 말 그대로 옮겨서 속하게 하는 것인데, 월경지 월경지(=비지, 견아상임지)는 고려, 조선 시대에 전국적으로 광범위하게 존재한 군현의 특수 구역으로써 고을의 경계를 규정함에 있어 경계가 불확실한 경우 떼어서 붙이는 구역이라 할 수 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