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의 부마
- 최초 등록일
- 2019.12.13
- 최종 저작일
- 20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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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려시대의 부마"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들어가며
2. 왕족으로서의 부마
3. 정치·경제적 지위
4. 맺는말
참고문헌
본문내용
부마(駙馬)란 왕의 사위를 일컫는 말로 왕녀(王女)와 혼인한 사람, 즉 공주(公主:왕의 적녀)․옹주(翁主:왕의 서녀)의 남편을 의미한다. 부마라는 명칭은 중국의 부마도위(駙馬都尉)라는 관직명에서 유래한 말로 전한(前漢) 무제(武帝) 때 처음 설치되었으며, 위(魏) 진(晉)대 이후부터 공주와 혼인한 자에게 그 관직을 맡긴 것에서 유래되었다.
고려(高麗)는 세습된 왕(王)이 다스리는 왕조 사회였다. 왕은 왕이라는 지위와 제도적 장치를 통해 통치권을 보장 받을 수 있었지만, 지방 호족(豪族) 또는 귀족 관료집단에 대한 원활한 통솔을 통해서 왕위를 유지하며 통치 행위를 할 수 있었다. 왕위를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해서는 왕실 세력 기반의 확충이 필요하였다. 호족 및 귀족 관료들과의 혼인은 왕실세력의 확장과 동시에 위협세력의 견제도 가능하게 했다. 그러므로 왕권의 강화와 유지라는 목적을 가지고 왕실혼이 이루어졌다. 한편 관료 집단의 측면에서 보면 왕실과의 혼인 관계를 맺는 것은 통치권자와의 혈연적 관계를 맺는 것으로 다른 집단과의 경쟁에서의 우위를 차지함으로써 그들의 세력 기반의 확대와 경제적 사회적 지위 유지에 크게 기여할 수 있었다.
개국 초기는 왕실이 통치권을 확보하며 지배체제를 구축하는 시기로 왕위계승과 왕권 장악을 둘러싸고 내부적인 갈등과 대립이 진행되는 시기이다. 그러므로 건국초기에는 왕위계승이 순탄치 않거나 무력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러한 상황에서 왕이 즉위하기 위해서는 정치세력의 협조와 지원이 필수적이다. 왕위 계승과정에서는 이미 혼인을 맺은 가문과 그 지원세력을 활용하며, 즉위 후에는 집권에 협력한 인물이나 유력한 인물과의 혼인을 맺음으로서 통치기반을 확고히 하였다. 그러나 왕권이 안정화 되면 부마를 포함한 측근들은 왕의 지위를 위협하거나 혹은 물의를 빚어서 왕의 권위를 손상시키기도 하였기에 이들은 관리와 견제의 대상이었다.
참고 자료
고려 중기의 부마/ 김은영
조선 초기 公主·翁主 연구 / 차호연
고려와 조선시대 부마 비교 연구 / 장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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