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6대 대통령 선거 발제문 - 박정희, 윤보선 양자구도
- 최초 등록일
- 2020.01.13
- 최종 저작일
- 20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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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선거배경
1) 박정희 재집권
2) 야당 합당을 통한 일원화
2.선거전략
1) 여당의 선거전략
2) 야당의 선거전략
3.재집권의 영향
1) 야당 대표의 은퇴
2) 근대화와 경제개발의 지속
4.선거결과
1) 동여서야 현상
2) 경상도의 지방색
5.선거분석
1) 6대 대선에 대한 관전평
본문내용
개요
1967년 5월 3일 실시된 제 6대 대통령 선거는 워낙 이슈도 없고 결과가 비교적 쉽게 예측되는 선거다보니, 투표에 대한 관심이 과거에 비해 많이 떨어졌다. 당시 역대 대선 투표율 중 가장 낮은 83.6%를 기록하였다. 선거 후보는 박정희ㆍ윤보선을 비롯 오재영(통한당), 김준연(민중당), 전진한(한독당), 이세진(정의당), 대중당 서민호등 7명의 후보가 등록하였다. 대중당 서민호 후보는 야권 통합을 이유로 중도에 사퇴했습니다. 선거는 또 다시 박정희-윤보선의 양자 구도가 형성되었다.
1. 선거 배경
1) 박정희 재집권
한일회담에 대한 학생세력, 야당 정치인, 각계 지식인의 격렬한 반대를 미국의 후원으로 돌파한 박정희 대통령은 당시 린든 존슨 미국 대통령의 베트남전쟁 파병 요청에 적극 호응함으로써 미국의 지지를 확신했다. 공화당은 1967년 2월 2일 장충체육관에서 제4차 전당대회를 열어 박정희 총재를 대통령 후보로 재지명했다. 전국 대의원 2,698명과 7천여 명의 내빈이 참석해 우리나라 정당사상 최대 규모의 전당대회에서 박정희는 “영광의 승리를 위해 분발하자”면서 후보직을 수락했고 그 여세로 1967년 5월3일의 ‘제6대 대통령 선거’를 자신 있게 맞았다.
2) 야당 합당을 통한 일원화
야당은 시국관의 차이와 고질적인 파쟁으로 이합집산을 거듭했다. 1965년 6월 14일 원내 제1야당인 민정당과 제2야당인 민주당이 통합하여 제3공화국 출범 후 최초의 통합야당 민중당으로 출범했다. 그러나 민중당은 1965년 8월 한일협정 비준안과 베트남 파병안을 둘러싸고 당론이 양분되어, 의원직 사퇴와 당 해산을 주장하는 윤보선계가 결별, 1966년 3월 30일 신한당을 창당함으로써 통합 5개월 만에 분당되었다. 윤보선 계열의 강경파는 이해 6월 22일 한일기본조약이 체결되고 8월 14일 공화당 단독으로 이 조약이 국회에서 비준되자 이에 반발하여 의원직을 사퇴하고 민중당을 탈당, 신한당을 창당한 것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