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사] 스코틀랜드, 잉글랜드의 장로교회
- 최초 등록일
- 2003.09.25
- 최종 저작일
- 20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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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스콜틀랜드의 장로교회
2. 잉글랜드의 장로교회
본문내용
스코틀랜드에 언제 기독교가 전해졌는지는 전혀 알수 있다. 그러나 역사상에 기록으로 남아 있는 최초 기독교의 지도자는 콜럼바이다. 그는 약 563년경 아일랜드에서 스콜틀랜드에 와서 아이오나섬에 에 근거지를 두고 오늘날 스코틀랜드라고 일컬어지고 있는 지방에 전도하여 상당한 성과를 올렸다. 그후 2세기가 지나서 생겨난 신도들은 크루디스라고 불려졌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카톨릭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그들의 수호성인이 사도 베드로가 아니고 성앤드류인것도 그렇다.
그러나 경건한 로마 카톨릭교도였던 마가레트 여왕과 말콤왕이 결혼함으로 인하여 1150년경으로부터 약 400년간 나라 전체가 카톨릭화 되었다. 그러나 이기간에 행해졌던 것은 무지와 미신, 그리고 사악함 뿐이였다.
이때 종교개혁의 여명을 동트게 한 것은 패트릭 해밀톤 이였다. 그는 1528년에 화형에 처해졌다. 그뒤를 이어 조지 위셔트가 이단으로 심문을 받고 1564년에 화형에 처해졌다. 그러나 이들의 생애와 설교, 죽음은 민중들에게 깊은감명을 주었다//////
1534년 헨리 8세의 치세 아래 로마 카톨릭과 관계를 끊고 로마 교황대신에 국왕을 잉글랜드 교회의 머리로 한다는 수장령이 의회에서 결의되었다. 그러나 결국 잉글랜드에는 쥬네브나 독일과 같은 참다운 개혁은 없었다.
1547년에 헨리 8세가 주고,그 아들 에드워드 6가 즉위해서 교회의 머리가 되었다. 캔터베리의 대주교 토마스 그랜머의 지도 아래 39개조 신조가 교회의 새로운 신조로서 만들어졌고 성공회 기도서도 만들어졌다. 그러나 1553년 왕이 죽음으로써 모든 개혁은 여기서 단절되었다. 에드워드 6세의 후계자는 "피의 메리"라고 불려진 메리튜터였다. 이때 프로테스탄트 교도들은 난을 피해 대륙으로 도망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