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한국 근대사 및 독립운동사에서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중요한 인물인 '최재형'을 조사하여 작성한 인물보고서입니다.
최재형의 생애를 1910년 이전의 활동을 배경으로 서술하였고,
최재형과 같은 잘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들의 재조명을 결론으로 이끌어내었습니다.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 입력된 최재형 관련 문헌을 토대로 기술하였음을 밝힙니다.
목차
1. 서론
2. 생애
1) 연해주 대부 최재형의 성장 배경
2) 안치혜남도소
3) 동의회 총장 최재형
4) 4월 참변이 일어나다
3. 안중근과 최재형
4. 결론
5. 참고문헌
본문내용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사회 고위층 인사들의 지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뜻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현한 대한민국의 대표적 기업으로 ‘오뚜기’가 있으며 이밖에도 언론에 알려지지 않은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 기업은 상당할 것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갑질’이라는 용어가 등장하면서,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 사례는 줄고 갑질 사례가 대폭 증가하였다. 대한항공家의 ‘땅콩회항(2014)’과 이명희 갑질 등 대표적인 갑질을 중심으로 이와 비슷한 행태들이 각종 포털사이트 메인의 정치 칸에 대거 오르게 되었다. 2019년인 지금은 기업의 갑질 뿐만 아니라, 연예인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정치 · 기업과 손을 잡고 갑질을 하는 더욱 악질적인 행태가 장악하게 되었다. 이렇듯 최근에 들어서 대한민국은 개인주의와 자본주의가 팽배하여 이타심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비도덕적인 이슈들로 가득하게 되었다. 최재형(崔在亨)은 이러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현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함경북도 경원(鏡源)의 노비 출신으로서, 1869년에 경제적 이유로 러시아 연해주 지신허로 이주하여 1880년대에 귀화하였다. 얀치혜(煙秋) 지역의 도헌과 기업가로 활동하며 부를 축적한 러시아 연해주 지역의 대표 부호이며, 어린 시절 무역상선 선장 부부와의 인연으로 인해 얻은 능통한 러시아어 실력과 서양문명에 대한 넓은 지식을 기반으로 러시아 당국의 신임을 받는 인물이기도 하였다. 그는 기업가로 활동하며 모은 막대한 부를 개인의 안위에 사용하지 않고 재러 한인 사회의 발전과 의병운동에 힘씀으로써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인물로 여겨진다. 그의 별명이자 애칭이었던 ‘난로’라는 뜻의 페치카(пе́чка_최 페치카)를 통해, 그가 한인 동포들편에서 많은 도움을 주었던 따뜻한 사람임을 짐작하게 한다.
참고 자료
국가보훈처·독립기념관, 『국외독립운동사적지 실태조사보고서12』, 역사공간, 2012
박환, 『페치카 최재형』, 선인, 2018.
위 저자, 『시베리아 한인민족운동의 대부 최재형』, 역사공간, 2008.
위 저자, 『러시아 한인 유적 답사기』, 국학자료원, 2008
윤병석, 『해외동포의 원류-한인 고려인 조선족의 민족운동』, 집문당, 2005
박환, 「崔才亨과 재러한인사회 - 1905년 이전을 중심으로 -」, 韓國史學會, 1998.
박환, 「舊韓末 러시아 沿海州 崔才亨義兵 硏究」,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1999.
반병률, 「4월참변 당시 희생된 한인애국지사들」, 한국외국어대학교 역사문화연구소, 2007
위 저자, 「안중근(安重根)과 최재형(崔在亨)」, 한국외국어대학교 역사문화연구소, 2009.
이정은, 「崔才亨의 生涯와 獨立運動」,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1996.
독립운동가 최재형기념사업회(http://www.choijaihyung.or.kr), 검색어: 연보, 검색일: 2019. 04.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