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양무운동 실패에 관한 고찰"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머리말
2. 洋務派의 대두
3. 保守派와의 대립
4. 洋務派의 분열과 政策의 실패
5. 맺음말
본문내용
일반적으로 洋務運動은 1861년 辛酉政變에 의해 西太后와 恭親王 중심의 정권이 성립된 후, 1894년 淸日전쟁까지를 일반적으로 洋務運動 시기라고 부른다. 洋務運動은 서양의 앞선 군사지식과 무기 제조 기술을 받아들여 직면한 침략에 대비하고자 하는 것이었고, 둘째는 이미 여러 측면에서 문제점이 드러난 통치제도를 개혁함으로써 체제 붕괴를 방지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대부분 사람들은 洋務運動은 서양식 근대 공장이 건설되고, 근대화된 군대가 창설되었지만, 다른 국가들의 침략으로부터 패배함으로써 실패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洋務運動을 하기에는 중국 내부로부터의 분열이 있었으며, 하나의 힘으로 모이지 않고 서로 견제하며 洋務運動이 활발하게 진행되지 못했다.
물론 처음부터 洋務運動이 서양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실시한 운동이 아니다. 1920-1930년대 洋務運動은 대부분이 경제적인 면에 국한되었고, 洋務運動을 극대화 운동으로 파악하고 중국 자본주의의 기점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었다. 그러다 20년대 후반부터 사적 유물론의 입장에서 근대 중국사를 연구하자 洋務運動을 마르크스주의 역사관에 입각하여 분석하게 되었다. 李達의 대표적인 연구자로써 洋務運動을 통해 산업혁명의 과정을 밟아 나간 후 봉건제의 틀을 벗어나 근대사회로 나아가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경제적 측면에서 洋務運動을 분석하며 洋務運動을 외부로부터의 수모를 막아내고 이권을 만회하는 것을 목표로 하여 중국의 자본주의적 발전을 촉진하고 당시의 사회, 경제, 문화, 사상 등의 다양한 방면에서 변혁을 만들었고 중국 근대화를 추진시킨 것으로 보았다.
1930년대 이래 반식민지 반봉건사회론에 입각하여 洋務運動은 제국주의 열강과 결탁한 봉건 계급의 자구 운동으로 인식하였다. 본질적인 개혁을 도외시한 봉건적, 매판적 운동으로 평가하였다. 그리고 40년대 후반이 되면 洋務運動 연구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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