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이 오사무 <사양> 발제문
- 최초 등록일
- 2020.05.12
- 최종 저작일
- 20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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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다자이 오사무_사양"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다자이 오사무
1-1. 다자이 오사무는 누구인가?
1-2. 다자이 오사무의 삶
1-3. 다자이 오사무 – 자살: 4번의 실패와 1번의 성공
2. <사양>
2-1. <사양>의 등장인물과 줄거리
2-2. 다자이 오사무 작품의 특징 – 후기문학 <사양>을 중심으로
3. <사양> 텍스트 해석
3-1. 귀족에서 평민으로
3-2. 뱀과 어머니
3-3. 사랑만으로는 부족한 ‘도덕혁명’
3-4. ‘모성’을 통해 완성되는 ‘도덕혁명’
3-5. 도덕적 과도기에서의 가즈코
4. 논의해보고 싶은 점
5. 참고문헌
본문내용
1. 다자이 오사무(太宰治), 그는 누구인가?
다자이 오사무(太宰治, 1909년 6월 19일-1948년 6월13일)는 오다 사쿠노스케, 사카구치 안고와 함께 일본 전후 무뢰파(無賴派)1)를 대표하는 일본의 소설가이다. 본명은 쓰시마 슈지(津島修治_인데, 필명을 쓴 까닭은 쓰가루 지방(아오모리현 서부) 출신인 그가 자신의 본명을 읽으면 쓰가루 방언의 영향으로 쓰시마가 ’지시마(チシマ)‘로 들리지만, 다자이 오사무는 방언으로 읽어도 발음이 그대로이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달려라 메로스(원제: 走れメロス)>, <인간실격>, <사양(斜陽)>으로 대표되는 작품을 남긴 다자이 오사무가 한 여인과 함께 몸을 던져 생을 마감한 것은 1948년의 일이었다. 그의 시체가 발견된 것은 그로부터 닷새 후, 공교롭게도 그가 서른아홉 살이 되는 생일날이었다. 다자이 오사무를 아끼는 사람들은 지금도 그의 시신이 발견된 날을 ‘앵두 기일’이라고 하며 해마다 그를 기리는 행사를 연다. 길지 않은 생에 동안 가늠할 수 없는 죄의식과 좌절, 공포로 살다간 그는 수차례의 약물 중독과 자살미수, 그리고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한 그의 이력으로 인해 ‘정신적으로 나약한 허무주의자’라는 혹평에도 불구하고 그의 무덤가에는 오늘날까지 수많은 독자들의 꽃다발이 끊이지 않는다.
1-2. 다자이 오사무의 삶
작가 데뷔 전
다자이는 일본의 메이지 유신 이후 대금업으로 돈을 모은 신흥 상인이자 대지주가 된 집안에서 태어났다.(그의 형제자매는 모두 11명으로 다자이가 태어날 즈음 맏형과 둘째 형은 이미 죽고 없었다) 아버지인 츠시마 겐에몬(津島源右衛門)은 데릴사위로서 쓰시마 집안으로 들어왔다. 츠시마는 마을의 대지주이자 현회 의원, 중의원과 귀족원의 의원까지 지낸 지역의 유지였으며, 다자이가 태어났을 당시 그의 집안은 아오모리현에서 가장 세금을 많이 내는 가문이었으며, 아버지의 중의원과 귀족원 의원직도 실은 돈으로 주고 산 것이었다.
참고 자료
"서거 70주기 맞은 다자이 오사무의 저력". Weekly.Donga.Com , 2020, https://weekly.donga.com/3/all/11/13469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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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육(2017), 「일본근현대문학속의 기독교적 묘사고찰 – 다자이 오사무(太宰治)와 성서를 중심으로-」, 『한국일본언어문화학회』39권, p269-289
蔡淑香(2008), 「다자이 오사무(太宰治)『사양(斜陽)』론 ― 패전 후 일상 속 <도덕혁명>과 <신생(新生)> ― 」, 일본학보, 74:2, 319-330
유은영(2006), 「다자이 오사무(太宰治)의『사양』고찰 : 카즈코(かずこ)의 '도덕에 대한 반역'과 모성 문제를 중심으로」,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김경숙(2018), 「패전 직후의 일본의 사회문화상-다자이 오사무(太宰治)의 후기작품을 중심으로-」, 『한국일본언어문화학회』78권, p255-2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