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서양사, 부르주아의 위기
- 최초 등록일
- 2020.05.26
- 최종 저작일
- 20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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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19세기 서양사, 부르주아의 위기"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Ⅰ. 서 론
Ⅱ. 새로운 생활양식의 등장
Ⅲ. 부르주아의 범위의 모호성
Ⅳ. 부르주아의 기준
Ⅴ. 신중산층
Ⅵ. 황금시대를 이끈 부르주아
Ⅶ. 부르주아의 위기
Ⅷ. 결론
참고 문헌
본문내용
Ⅰ. 서 론
부르주아의 시대에 출세한 중산층 계급들은 자신들의 문명을 확신하고 있었고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재정상의 문제에 대해서도 대개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심리적으로도 편안함을 갖게 된 것은 그 세기 말에나 가서였다. 그 때에 이르러 그들은 자신들을 떠 받쳐줄, 계급적 요구에 맞게 디자인된 물품들과 자신들의 생활양식을 개발하게 되었다. 한편, 부르주아를 어떻게 정의할 것이며 여러 범주들 가운데 어떤 자가 어떤 범주에 포함되는가에 관한 그 경계의 문제는 불분명하다. 이러한 가운데 당시 부르주아 스스로 그들의 특권과 확실한 존경을 포함한 중산층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기준을 세웠는데 그것은 교육과 거주상의 격리, 스포츠로 표출되었고 이 세 가지는 중산층의 사회적 특징이 되었다. 축적된 자본을 바탕으로 그들만의 사회를 이룩해간 부르주아의 시대가 과연 언제까지 지속되었으며 그들이 어떤 파멸을 맞이했는지 부르주아 시대의 여러 면모들과 그들의 붕괴까지 알아보도록 하겠다.
Ⅱ. 새로운 생활양식의 등장
부르주아들의 세기에서 역설적인 것은 그들의 생활양식이 뒤늦게야 ‘부르주아적’이 되었다는 것, 이러한 변화가 중심에서가 아닌 주변에서 시작되었다는 것 그리고 이와 같은 독특한 부르주아적 생활양식과 방식은 잠깐 동안만 유행했다는 점이었다. 이러한 역설을 검토해봄으로써 이 시대의 중산층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살펴보기로 하자. 부르주아들의 새로운 생활양식은 교외의 집과 정원이었다. 부르주아 사회의 다른 많은 것들처럼 이것은 고전적 자본주의 국가인 영국에서 시작되었다. 이것을 최초로 찾아볼 수 있는 곳은 1870년대의 노먼 쇼(Norman Shaw)와 같은 건축가들에 의해 건설된 교외 정원 주택지로서 유복하지만 특별히 부유하지는 않은 중산층 가족을 위해 지어졌던 것이다(베드퍼드 공원).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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