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서양의 낭만주의 (Romanticism)
- 최초 등록일
- 2020.05.26
- 최종 저작일
- 20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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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19세기 서양의 낭만주의 (Romanticism)"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Ⅰ. 서 론
Ⅱ. 낭만주의의 형성 배경
Ⅲ. 反이성주의
Ⅳ. 자연예찬과 신비적 자연관
Ⅴ. 개성주의와 유기체적 사회관
Ⅰ. 개성주의
2. 유기체적 세계관
3. 문화적 민족주의
4. 사상의 합과 영향
Ⅵ. 전통 숭상과 역사적 사고
Ⅶ. 결 론
참고 문헌
본문내용
Ⅰ. 서 론
로맨티시즘이라는 말이 유럽의 주요언어에서 나타나는 시기는 19세기 전반으로서 사실상 로맨틱 운동이 이미 출범한 뒤의 일이다. 그러나 로맨틱이라는 말은 이미 17세기 후반에 영어와 프랑스어에서 나타나고 있다. 18세기 후반에 독일로 흘러들어간 이 말은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되다가 아우구스트 슐레겔(August W. Schlegel)에 의해서 고전적이라는 말에 대립되는 개념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아울러 슐레겔은 ‘고전적-로맨틱’의 관계를 ‘기계적-유기적’ 그리고 ‘조형적-회화적’이라는 새로운 대응관계와 결부시켰다. 이후 슐레겔이 의미를 규정한 로맨틱의 개념은 독일로부터 유럽각지로 퍼져나갔던 것이다. 낭만주의(Romanticism)란 넓게 보아서 18세기말에서 19세기 전반에 걸쳐 주로 계몽주의의 합리적 기계론적 세계관에 반발하여 일어난 범 유럽적 사상운동이다. 이 운동은 계몽주의를 이념적 지주로 삼았던 프랑스 대혁명, 그리고 혁명 이념의 전파자였던 나폴레옹에 맞서 싸웠던 독일인들의 이른바 해방전쟁(Befreiungskrieg)을 거치는 정치적 격동기 속에서 더욱 심화되었다. 비록 하나의 문예사조에서 비롯된 것이기는 하나 단순한 문예운동의 테두리를 벗어나 종교·철학·사회·정치·경제·역사·사상 전반에 심대하고 지속적인 영향을 주었다. 오늘날까지도 로맨티시즘의 영향아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될 정도다. 이에 따라 로맨티시즘의 내용과 계몽주의와의 대립요소를 인간관·자연관·사회관·역사관에 중점을 두어 고찰할 것이다.
Ⅱ. 낭만주의의 형성 배경
낭만주의는 왜 계몽주의에 반발하였는가. 우선 로맨틱들은 계몽주의의 세계가 너무 편협하다고 생각하였다. 왜냐하면 계몽주의가 기하학적 사고에 기초하고 있으며, 신고전주의나 로크적 경험론과 이념적으로 긴밀한 관계에 있었기 때문이다. 기하학적 정신은 모든 삶을 이성에 종속시키려 함으로써 삶을 기계화하고 품격을 훼손시키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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