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심미화와 거대담론의 공간 - 미술관과 박물관의 미술, 정치, 역사의 결합과 근대 문화의 기념비적 의미 연구 -
- 최초 등록일
- 2020.07.06
- 최종 저작일
- 20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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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역사의 심미화와 거대담론의 공간 - 미술관과 박물관의 미술, 정치, 역사의 결합과 근대 문화의 기념비적 의미 연구 -"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Ⅰ. 서 론
Ⅱ. 미술관의 역사와 이론
1. 박물관의 형성
2. 미술관과 미술사
Ⅲ. 독일 국립미술관
1. ‘미적 혁명’과 독일 근대문화의 특징
2. 박물관 건립의 호황
3. 국립미술관의 탄생
4. 역사주의와 모더니즘의 갈등
Ⅳ. 결론과 시사점
본문내용
미술관(art museum)을 포함한 박물관(museum)의 건립은 근대적인 현상이다. 현재와 과거의 유대가 깨어지고 미래에 대한 전망이 불투명해지자 이를 보완하기 위해 과거를 기억하는 새로운 방식이 등장한다. 과거의 사실 또는 유물이 원래의 환경으로부터 떼어내져 전혀 새로운 질서 속에 편입되는 것이다. 이 질서는 이른바 역사라고 불린다.박물관은 과거의 삶이 현재까지 지속되는 전통사회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박물관은 근대적 시간질서인 역사가 제 모습을 드러내는 곳이다. 여기서 역사는 시각적 이미지로 나타난다. 박물관은 역사와 본원적 친화성을 지니지만 박물관의 원형은 역사박물관이 아니라 미술관이었다. 박물관은 미술관으로부터 출발했다. 미술관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우선 미술이라는 개념이 존재해야 한다. 미술은 영어의 fine arts를 번역한 것이다. 18세기 중엽 창조된 불어 개념 beaux arts에서 왔다. 19세기를 거치면서 fine arts는 점차 시각예술 부문만을 지칭하게 되었다. 미술 개념의 형성은 미(美)가 인간행위를 지배하는 하나의 독립적인 원리로 고양됨을 뜻한다. 미의 가치상승을 통한 미술의 자립화는 근대의 성취였다. 아직 미술 개념이 없던 전근대 세계에서 현재 우리가 미술이라 부르는 영역은 정치적·사회적 기능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었다. 미술이 자립하기 위해서는 미를 중심으로 하는 고유의 가치체계와 이에 따른 작가의 자기의식 그리고 이를 지탱할 수 있는 사회·문화적 토대가 요구되었다. 프랑스 혁명을 전후로 미술의 새로운 지평이 열리기 시작했다. 부르주아 계급은 미적 체험이야말로 자신의 물질적 욕망을 도덕적 자유로 승화시킬 수 있는 최상의 계기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순수한 취향을 도야함으로써 허영과 과시욕에 빠져 있던 귀족층보다 우월해질 수 있다고 믿었다. 미술사(art history)는 미술의 노정이 독자적인 방향과 목표지점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참고 자료
전진성,『역사가 기억을 말하다』,휴머니스트, 2009.
프리드리히 니체,「삶에 대한 역사의 공과」,『반시대적 고찰』, 청하, 1990.
박소현,「‘고려자기는 어떻게 ’미술‘이 되었나-식민지시대 ’고려자기열광‘과 이왕가박물관의 정치학」,『사회연구』, 2006.
전진성,「19세기 독일 역사주의 건축의 사례를 통해 본 심미적 역사주의」,『한국사학사학회』24권,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