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만주제국의 몽골족"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서론
1.1. 연구 동기
2.1. 누르하치의 몽골족 포섭
2.2. 청조 성립과 몽골의 예속 과정
2.3. 청조의 對몽골 통치 내용
2.4. 청조의 對몽골 정책 변화와 전개
3.결론
3.1. 청조의 몽골 지배의 성격
3.2. 참고 문헌
본문내용
청조(淸朝)는 중국 역사상 마지막 왕조로서, 이전 명대(明代)보다 더욱 광대한 영역을 지배했고, 추가로 강역이 된 곳은 몽골족, 회족, 티베트족이 거주하는 지역이었다. 즉 여러 민족이 공존하는 다민족제국이었다. 물론 청조 인구의 대다수는 한족이었고 그들은 직성으로 통치됐지만, 청대 새로 추가된 영토, 즉 번부는 한족과는 유리되어 이번원(理藩院)이라는 기구에서 총괄했다. 그런데 청대 들어서 이렇게 광활해진 번부는 사실 모두 몽골족과의 상호작용에서 획득되었다. 내몽골과 외몽골(할하), 서몽골 준가르에 대한 영향력 확대와 갈등 과정에서 신강, 티베트까지 확보하게 된 것이었다. 이번원의 전신이 몽고 아문이라는 기구였고 제국 통치 내내 몽골 왕공은 청조와 통혼 관계를 계속 유지했다는 점은 청조에서의 몽골과의 관계의 중요성을 가늠케 하는 부분이다. 따라서 몽골을 다른 번부와 동일하게 보거나, 단순한 예속민으로 파악하는 것은 청조와 몽골족의 관계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는 동기에서 본고를 진행하였다. 이 글에서는 그를 위해 먼저 만주족의 흥기와 몽골족의 예속 과정을 살펴보고, 만주족의 제국 체제가 완성되었을 때의 청조와 몽골족의 관계, 그리고 청 후기 몽골에서의 상황 변화를 추적하여 청조의 몽골 지배의 성격을 파악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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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특징들을 상기하면 만주족의 제국으로서의 청에게 몽골족은 개국의 동반자이자, 계속된 협력의 대상이었고, 실제로 그들에게 많은 우대가 행해지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한편 아래 예속된 이민족으로서, 선조 여진족을 패퇴시킨 이들의 세력이 강해지는 것을 철저히 통제했다. 하지만 이런 것은 각종 사여나 티베트 불교의 진흥, 관직 진출의 기회 등을 통해 조화로운 제국의 모습으로 분식시켰던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19세기 중엽 이후 청 조정의 내부 구성의 변화와 여러 개혁의 시도로 기존의 모습과는 다른 양태를 띠게 되고, 몽골족은 바로 이탈을 선언하게 되는 것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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