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 사학과 과제 독후감 서평
- 최초 등록일
- 2020.11.15
- 최종 저작일
- 20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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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무리한 각주남발이나 원문인용은 하지 않았습니다. 필요만 하시다면 충분히 7p 이상으로 늘릴 수 있으실겁니다.
일연과 삼국유사에 대한 간략한 요약, 1권 ~ 5권까지의 내용소개 및 느낀점, 그리고 마지막으로 총평으로 구성되어있습니다.
학기 잘 마무리 하세요...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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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우선 『삼국유사』의 저자는 일연(一然 : 1206∼1289)이다. 경주(慶州) 장산군(章山郡) 출신으로 성은 김씨(金氏)요 이름은 견명(見明)으로 알려져 있으나, 전씨(全氏)로 재고해야할 필요가 있다. 일연은 일찍이 구족계(具足戒)를 받았으며 고종 14년인 22살에는 승과(僧科)에 상상과(上上科)에 합격한 뒤 오늘날의 비슬산인 포산(包山) 보당암(寶幢庵)을 시작으로 무주암(無住庵) 묘문암(妙門庵) 등에 주석하였다. 그런데 여기서의 암(庵)이란 사찰 속 수행을 위하여 설립된 작은 공간으로서, 과거에 합격하였음에도 중앙정계가 아닌 산속으로 향한 이유는 당시 혼란스러웠던 무신정권에 대한 반발감이나 연이은 몽골의 침입으로 인하여 잠시 피난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대장경을 간행하고 있었던 정안(鄭晏)의 청으로 정림사(定林寺)에 주지로 머물렀으며, 무오정변(戊午政變)으로 왕정복고를 이끈 원종(元宗)에게 대선사(大禪師)를 받은 뒤 개경(開京)의 선월사(禪月社)에서 주석하였던바, 일연이 대장경 간행 사업에 참여하였는지 그리고 강화도와 개경 중 어디로 가였는지는 한 번쯤 고민해봄이 좋을 듯하다.
한편 일연이 『삼국유사』를 완료한 시기와 장소, 그리고 실제로 직접 집필하였는지에 대하여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시기의 경우 『삼국유사』 내 가장 늦은 연호로 확인되는 ‘지원(至元) 18년’으로 미루어 보아, 적어도 1281년에는 이미 찬술되어 유통되었다는 주장이 제기된 바 있다. 그러나 권 제5에 명기된 국존(國尊)이란 단어는 충렬왕 9년인 1284년에 받은 책봉으로서 위의 논거는 반박된다. 혹은 지방에서 전하는 옛 기록[古鄕傳]을 수록하였으며 직접 답사한 것으로 보이는 흔적이 방대하기에, 일찍이 포산에 주석한 시기부터 편찬을 시작하여 입적한 1289년에 인각사에서 완료하였다는 주장도 참고해볼만 하다. 집필자에 대한 논란의 경우 일연의 행적과 저서를 상세히 기록한 『보각국사비명(普覺國師碑銘)』에 정작 『삼국유사』가 누락되어 있어 의구심을 더해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