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의 실효성 리포트
- 최초 등록일
- 2020.12.25
- 최종 저작일
- 20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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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전쟁의 실효성 리포트"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Ⅰ. 체결과정
1. 근거
2. 배경
3. 내용
Ⅱ. 정전협정에 의한 제도・기구
1. MDL / DMZ
2. 중립국감독위원회
3. 군사정전위원회
4. 포로문제
Ⅲ. 협정내용
Ⅳ. 당사자 문제
1. 조약법 이론
2. 실질적당사자론
3. 한국, 한국전에 참전한 16개 연합국, 북한, 중국을 당사자로 보는 견해
4. 한국, 유엔, 북한, 중국을 당사자로 보는 견해
5. 남한, 북한, 미국, 중국을 당사자로 보는 견해
Ⅴ. 결론 및 사견
본문내용
1. 근거
한국전쟁은 1951년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전선이 고착화되면서 지구전의 양상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미국과 소련은 비밀협상을 거쳐〈휴전회담〉을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이 비밀합의에 따라서 유엔 주재 소련대사 말리크가 1951년 6월 23일 유엔 라디오 연설을 통하여 전쟁 교전 당사국들 사이의 휴전과 군병력의 38선으로의 철수를 논의하기 위한〈휴전회담〉을 개최할 것을 제의했다. 이 제의에 호응하여 맥아더 해임 이후 새로 유엔군 총사령관으로 부임한 리지웨이 사령관은 원산 앞 바다에 떠 있는 덴마크 의료선에서 〈휴전회담〉을 개최하자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에 대해 공산측은 개성에서 〈휴전회담〉을 개최할 것을 제의해 왔다. 유엔군측은 개성에서 개최하자는 공산측의 제의를 받아들여 1951년 7월 10일 개성에서 〈휴전회담〉이 시작되었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만2년에 걸쳐 159회의 본회담과 765회의 각종 회담이 개최되었다. 이러한 과정은 「휴전협정」 체결 과정이 얼마나 어려운이었는지를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2. 배경
정전협상 과정에서 쟁점이 되었던 사안들은 군사분계선 설정문제, 외국군의 철수 문제, 정전감시위원회 설치 문제, 포로 송환 방식 등이었다. 유엔군측은 현 접촉선을 분계선으로 제안했지만 공산측은 38선을 군사분계선으로 할 것을 고집했다. 이 문제에 대한 논란은 1952년 1월 27일 현 접촉선으로 하기로 양측이 합의에 이르게 되었다. 군사분계선 문제가 합의된 이후 공산측은 외국 군대의 즉각적인 철수를 주장했다. 그러나 유엔군측은 철군 문제는 정전협상에서 다루어져야 할 것이 아니라 「정전협정」 체결 후 개최될 정치회담에서 다루어야 할 문제라고 주장했다. 이 사안은 유엔군측의 안이 그대로 받아들여졌다. 양측은 비무장지대에서 군사 활동을 감시할군사정전위원회 설치에 합의했다. 비무장지대는 유엔군측이 3.2km, 공산측이 2km로 각각 제의했지만 4km로 하기로 합의를 보았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