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해방운동] 민족해방운동에 대한 짧은 단상
- 최초 등록일
- 2004.12.22
- 최종 저작일
- 20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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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1920년대는 1910년대의 구조와 그 모순이 심화되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큰 틀에서는 위에 서술한 내용과 그다지 차이를 찾을 수 없다고 할 수 있다. 산미증식계획과 쌀의 수탈을 통해 농민의 이농현상이 심화되고 도시 빈민이 늘고 그들은 도시 임금 노동자가 되는 일제자본주의 체제로 급속도로 조선이 변하는 시기라는 것이다. 그리고 회사령 철폐와 일본자본 진출은 본격적인 수탈체제로 변화하고 있는 당대 조선을 읽어낼 수 있겠다. 그러나 자본의 적극전 조선 진출은 다른 면에서는 노동운동이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있다. 이는 이후 조선공산당 창당의 밑거름이 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1910년대에 이어 1920년대는 민족해방운동이 다양하게 전개되었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겠다. 개략적으로 살펴보면 3․1운동 뒤 부르주아 민족주의 운동은 점차 일제와 타협하는 민족개량주의와 이를 거부하는 비타협적 민족주의로 분화되었다. 그리고 1925년 4월 조선공산당 창립이 된다. 크게는 부르주아 민족주의 계열과 사회주의 계열로 민족해방운동이 분화되었다고 할 수 있겠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부르주아 민족주의 계열은 이후 일제통치에 속박되고 친일의 길을 걷게 된다. 물론 침묵하는 부르주아 민족주의 계열도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풍랑의 시대에 침묵하는 지식인은 먼지보다 미약한 존재다. 그렇다면 결국 지식인 계층에서 항일운동의 맥을 이어가는 것은 사회주의 계열이라고 정리 될 수 있다. 1920년대를 지나 1930년대에도 분명 부르주아 민족주의 계열이 항일운동이 전개되고는 했지만 사회주의 계열의 항일운동의 성과에 비하면 가히 미비하다고 할 수 있다. 다분히 이데올로기적 남한 역사교육이 사회주의 계열의 치열하고 처절한 항일운동은 소개하지 않거나 폄하하고, 실오라기 같이 얇아 보이지도 않는 부르주아 계열의 항일운동을 크게 조명한 것이 문제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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