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신학]펠라기우스 논쟁
- 최초 등록일
- 2005.04.12
- 최종 저작일
- 20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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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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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 론
Ⅱ. 본 론
1. 사상의 배경
2. 펠라기우스 논쟁
3. 도나투스 논쟁
Ⅲ. 결 론
Ⅳ. 참고 문헌
본문내용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개종과 더불어 신학은 교회의 비밀회합이라는 은폐된 세계로부터 나와서, 로마제국 전체에 걸쳐 공적인 관심사가 되었다. 이때의 교리적인 논쟁은 점차 정치적이며 동시에 신학적인 중요성을 띤 문제가 되었다. 교부시대 특히 교부시대 이후(310-51)는 그리스도교 신학사에 있어서 하나의 분수령으로 간주될 수 있다.
특히 신학분야에서 교부시대에 활기있게 탐구되었던 것은 신약정경의 확립에 따른 문제였다. 그후에는 영지주의의 위협으로 인한 혼란스러움을 이겨나가기 위한 전통의 중요성이 부각되었다. 이와같이 하여 에큐메니칼 신조들이 확립되게 된다.
이때 권위있는 신조는 사도신경과 니케아신조를 들 수 있다. 그런데 이와동시에 그리스도의 신성과 위격의 논란이 전개된다.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그리스도의 신성강조와 안디옥 학파의 인성강조는 4세기 아리우스논쟁과 아폴리나리우스주의 논쟁들이 이 논쟁의 중요성을 말한다.
이것은 니케아 공의회(325)와 칼케돈공의회(451)에서 그리스도론의 논쟁을 종결하게 된다. 그후에는 삼위일체의 교리의 문제가 대두 되었는데 주된 취지는 그 교리의 근본적 타당성보다는 삼위일체가 이해되는 방식에 점차 관련을 맺게된다.
이 접근방식에서 동방교회와 서방교회가 관련되게 된다. 동방은 터키지역에 근거를 둔 캅파도키아의 교부들(가이사랴의 바실리우스,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 닛사의 그레고리우스)과 서방의 입장은 아우구스티누스와 관련되었다.
이때 서방교회에서 특별히 관심의 대상이 되었던 신학적 논쟁이 있었는데 이것은 교회의 교리와 은총의 교리였다. 교회의 거룩함에 대한 도나투스주의자들과의 논쟁과 은총에 관한 펠라기우스주의와의 논쟁이 바로 그것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