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문학] 내용형식논쟁
- 최초 등록일
- 2005.05.17
- 최종 저작일
- 2005.05
- 5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소개글
여러 책과 논문등을 바탕으로 한 레포트 입니다
도움이 되었으면 해요^^
목차
1. 1920년대 문단의 상황
2. 김기진과 박영희
3. 내용형식 논쟁의 전개
4. 내용형식 논쟁의 영향
5. 내용형식 논쟁의 한계
6. 내용형식 논쟁의 의의
본문내용
1920년대 초 우리 문단은 1919년 3.1운동의 기대감과 그 실패에서 온 절망감에 의해 분위기가 매우 암울했고, 그 암울한 분위기 속에서 현실 도피적 낭만주의 성향이 만재했다. 그 당시 한국 최초의 시 동인지인 [백조]는 일본유학에서 돌아온 김기진의 합류로 동인들이 기존의 낭만주의 또는 예술지상주의 문학에 대해 회의를 느끼면서 붕괴해 갔다. 김기진은 일본 동경유학시절 프로문학을 접하면서 계급문학에 눈을 뜨고, 1923년 5월에 귀국하여, 귀국 직후 2~4개월(1923년 7월~9월)동안 회월 박영희와 만나 조선 문학의 진로를 논하였다. “1923년 5월에 내가 ... 서울에 돌아와서도 나와 박은 날마다 만났다. ... 그랬기 때문에 그는 1924년 2월호 [개벽]에 제정 러시아 환멸기의 문학을 소개하고 따로 [조선문단의 최근 경향]이라는 것을 새로운 각도에서 논하기도 하였던 것이다.” 박영희가 팔봉의 영향을 받아 계급문학에 경사된 것은 이 때이다. 회월은 같은 해 가을부터 계급사상으로 완전히 기울기 시작하여 낭만주의를 버리고 뚜르게네프, 체홈 등 러시아문학을 통하여 현실성과 사상성을 받아들이기 시작하였다. 이 것은 조선일보 1933년 8월 24일자에 실린 박영희의 글 [옛날 양식: 투르게넵흐와 나와]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나 있다.
그 후 KAPF를 조직하기 전까지 인생을 위한 예술, 현실과 싸우는 의지의 예술을 지향한 김팔봉, [초창기에 참가한 늦동이], [세대]제14호, (1964. 7) p.173
[PASKYULA]에 관계한다. 회월에 이어 팔봉도 [토월회] 제1차(1923.7), 제2차(1923.9)공연이 끝난 뒤 [토월회]를 탈퇴하고 [PASKYULA]에 가담하게 된다. 1920년 당시에 존재하는 예술단체로는 이 외에 [염군사]라는 문학조직이 있었는데, 두 단체는 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는 것에 대해서는 공통점을 보이지만, [염군사]측이 사상성이 강하고 운동을 중시하는 반면 [PASKYULA]는 운동성보다는 문학성이 강했다고 할 수 있다.
참고 자료
한국 현대문학 논쟁사 1-2 방송대학TV
박영희 연구 - 김윤식 열음사(1989)
카프문학 운동연구 - 역사문제연구소 1989
박영희 전집 - 이동희 영남대학교출판부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