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사] 농지개혁 전후의 대지주 동향
- 최초 등록일
- 2005.07.06
- 최종 저작일
- 20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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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 이 과목 A0 받은걸보면 레폿 점수도 괜찮았던 듯요
목차
1. 서 언
2. 일제하 대지주의 존재 형태
3. 해방직후 대지주의 농지개혁에의 대응
4. 농지개혁 이후의 대지주와 농촌사회의 변모
5. 결어
본문내용
1. 서 언
1945년의 광복은 조선사회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특히 이 시기 대지주들은 ‘농지개혁’이라는 토지개혁제도를 겪으며 기존 사회와 다른 경제체제 하 사회로의 적응을 강요받았다. 이 과정에서 이들은 산업자본가로 변신하거나 몰락하였다. 이 논문에서는 농지개혁을 전후 남한 대지주들의 변화모습을 정치·경제·사회적 측면에서 살펴보며 이러한 변화모습이 지닌 의미를 되새겨보도록 한다.
2. 일제하 대지주의 존재 형태
일제하 대지주는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였다. 다양한 존재 형태에 불구하고, 이들은 크게 둘로 나눌 수 있었는데, 하나는 토지개량이나 농사 개량에 별다른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채 모든 업무를 마름 등에게 전담한 채 소작료만 수취하는 재래적․정태적 지주였다. 다른 하나는 농장 경영에 능동적으로 참여하여 新농법이나 과학적 관리 기법을 도입하여 기업적으로 농장을 운영한 동태적․기업가적 지주였다.
일제 시대 실시한 토지조사사업과 부동산 등기제도는 토지소유권을 보다 확실히 보장하였다. 또한, 이 시기에 도입된 근대적인 금융시스템(은행 제도 등)은 지주에게 금융 자본 이용을 손쉽게 만들어 주었으므로 이 시대에 이르러서 지주층과 금융자본의 유착 결합이 사회전반에 자리 잡게 되었다. 실제로 일제하의 지주들은 토지와 미곡 등을 담보로 자금을 차입하는 일이 일상적이었으며, 아예 은행의 발기인, 주주, 중역으로서 그 설립과 운영에 참여하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이러한 은행 자금 이용은 지주에게 엄청난 기회를 제공함과 동시에 커다란 위험이 되기도 했다. 公금리와 私금리의 차이가 큰 당시의 대부자금시장에서 저리의 은행자금을 이용하여 얻을 수 있는 이익도 상당했지만, 원리금을 상환하지 못할 경우 발생하는 파산의 위험 또한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시기 농장경영은 미가 하락, 흉작, 소작쟁의, 개간 및 간척공사의 차질 기타 많은 리스크를 가진 사업이었기에 원리금을 갚지 못해 파산하는 지주도 많았다.
참고 자료
농지개혁 전후의 대지주 동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