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대 여가와생활] 여가와생활 답사기-수원화성(華城) - 전통 문화 속에 스며든 과학
- 최초 등록일
- 2005.09.23
- 최종 저작일
- 20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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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방송대 교양과목 여가와 생활 과제물입니다.
직접 문화재를 답사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당학기 과제물로 만점 받았습니다.
목차
1. 선정동기 – 수원 화성을 답사하기로 한 이유
2. 사전 학습내용 – 수원 화성에 대한 기초적인 정보 조사
3. 준비내용 – 화성성역의궤 해설서 및 관련자료 조사 및 답사 포인트 선정
4. 현장 답사내용 – 미석, 축성기술, 아치형 성벽에 대한 탐구과정
5. 답사를 마치고 – 답사소감, 화성홍보에 대한 문제점, 추가 답사계획
본문내용
수원 화성(華城)은 우리나라 성곽문화의 백미로 손꼽힌다.
이 성은 사도세자의 능이 화성으로 이장된 지 5년 후(1794년)에 착수되어, 성곽은 2년 반만에 완공되었는데 당대에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능력과 기술을 집약 시킨 건축물이다. 본래의 수원의 행정청은 사도세자의 능이 있는 화산(花山) 아래였다 하는데 능을 이장하면서 수원읍과 민가들을 옮기지 않을 수 없었고 그래서 지금의 팔달산 아래에 화성(華城) 신도시를 조성한 것이다.
번암 채제공이 성역의 총지휘를 맡고 다산 정약용이 축성의 모든 과정을 계획 감독했으며 특히 정약용이 발명한 활차와 거중기가 매우 효율적으로 사용하였고 실용성과 합리적인 구조와 구조물을 과학적으로 치밀하게 배치하는 등 수원성은 이때까지의 건축문화에 일대 혁신을 가져온 것이었다.
특히 성곽의 축조에 석재와 벽돌을 병용한 것 그리고 화살과 창검을 방어하는 구조뿐만 아니라 총포를 쏠 수 있는 근대적 성곽 구조를 갖추고 있고 또한 용재를 규격화하여 거중기등의 기계장치를 활용한 점 등은 우리나라 성곽 사상 가장 특기할 일이다.
성곽의 총길이는 5520m이며, 건축물은 사대문(長安門, 八達門, 蒼龍門, 華西門)과 암문(暗門) 4개, 수문(水門) 2개, 적대(敵臺) 4개, 공심돈(空心墩) 3개, 봉돈(烽墩) 1개, 포루(砲樓) 5개, 장대(將臺) 2개, 각루(角樓) 4개, 포사(鋪舍) 5개 등 다양한 구조물을 치밀하고 규모있게 배치하였고 성 내에는 행궁(行宮)을 마련하여 왕이 머물도록 하였다.
화성의 행궁은 규모가 매우 커서 정조가 능행길에 머물곤 했는데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연 곳으로도 유명하다.
행궁은 아쉽게도 1910년 일제강점기에 의료시설을 유치하면서 폐쇄되어 낙남헌이라는 건물 한 동만 남아 있었는데 1996년부터 수원시에 의해 대대적으로 복원을 착수하여 지금은 완공단계에 있다.
정조는 성곽이 완성되자 화성 축조공사의 전말을 소상한 보고서를 작성케 했다.
그렇게 작성된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에 따라 당시 사용된 물자와 돈 등 모든 상황을 상세히 알 수가 있었고 6·25 사변 때 파손된 성곽을 어렵지 않게 복원할 수가 있었다.
참고 자료
직접 답사 후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