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유중임의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에 관한 고찰
목차
1. 지은이 : 유중임(柳重臨)
2. [증보산림경제] 해제
2-1. {산림경제} 증보사업과 [증보산림경제]의 구성
2-2. `치농`편의 증보사업과 농업경제의 구상
2-3. 한전농업과 상업적 농업을 위한 배려
2-4. 종합농서 [증보산림경제]에 담긴 근대지향적 중농주의
본문내용
유중임과 그가 편찬한 증보산림경제에 관하여 알아보자. 유중임은 조선후기의 의관(醫官)으로서, 당시의 대표적인 농서였던 [산림경제]를 증보하였던 뛰어난 농학자였다. 그의 본관은 문화(文化)이었으며 고, 또한 자는 대이(大而)이고 호는 문성(文城)이었다. 비록 태어난 날과 죽은 날조차 아직도 밝혀지지 않고있는 비교적 알려지지 않은 학자이지만, 유중임은 숙종 때의 두의(痘醫)였던 유상(柳)의 후손이었음이 분명하다.
임희성(任希聖)에 따르면, 유중임은 젊은 시절에는 군문에 종사하였으며, 그 후 중년 이후인 영조 때에 왕실병원인 태의내원(太醫內院)의 의약(議藥)이란 관직에 임명되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그는 영조 42년인 1766년에는 16권 12책이란 방대한 분량의 [증보산림경제]를 편찬하였다. 그 뒤에도 유중임은 내의(內醫)가 되어 양반 가운데서 서반(西班), 즉 군직(軍職)의 녹을 받으면서 의무(醫務)에 계속 종사하였다고 한다.
비록 그가 소시(少試)에 합격하고 군직과 의관을 봉직하였지만, 그는 평소 이러한 벼슬살이를 좋아하지는 않았다. 그는 특히 성격이 매우 호방하고 남다른 정의감의 소유자였으며, 특히 고시가를 좋아하여 수백 편씩이나 모아두고 이를 소리내어 읊조리면서 즐겼을 정도로 예술적인 소양이 있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이처럼 영조의 내의(內醫)였던 유중임은 과학자다운 안목에서 오랜 노력 끝에 [산림경제]를 증보하기 시작하였는데, 특히 그는 농가에 관한 서적이면 고금을 막론하고 수집하여 검토하였을 정도로 열심이었다고 한다. 그는 자기의 관점에서 거의 모든 항목에 첨삭을 가하였을 뿐 아니라, 새로운 항목을 마련하여 독자로 하여금 일목요연하게 읽을 수 있게 배려하였다. 또한 유중임은 우리 농법을 중심으로 [산림경제]를 증보하였으나, 중국 농서와 선진농법의 참고와 인용에는 조금도 인색하지 않았다.
특히 유중임이 그의 농서에서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는 것은 `시장과 관련된 농업경영론`이었다. 특히 그는 `농가요무(農家要務)`란 항에서, `1년2작`에 바탕을 둔 한전농업을 중심으로 `상업적 농업`을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할 정도의 남다른 혜안을 가지고 있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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