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관리]충무공 이순신의 상황이론적리더쉽
- 최초 등록일
- 2005.11.22
- 최종 저작일
- 20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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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이 보고서는 상황이론적 리더쉽에 관한 정의와 그와 관련된 피들러의 상황적합 모델
,허시와 블랜차드의 상황적 리더십 모델,하우스의 목표ㆍ경로 리더십 이론,브룸ㆍ예튼 모델을 설명하였다. 그리고 상황이론적 리더쉽에 대표적 인물인 이순신 장군에 대하여 알아보고, 그의 상황이론적 리더쉽에 관하여 적은 것 이다.
목차
Ⅰ. 시작하며
Ⅱ. 상황이론적 리더십 이론
1. 피들러의 상황적합 모델
2. 허시와 블랜차드의 상황적 리더십 모델
3. 하우스의 목표ㆍ경로 리더십 이론
4. 브룸ㆍ예튼 모델
Ⅲ. 리더십 관점으로 살펴본 충무공 이순신
1. 이순신 장군의 삶에 나타난 리더십
2. 상황이론적으로 살펴본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
Ⅳ. 마치며
본문내용
이순신(李舜臣, 1545~1598)은 서울에서 부천 덕수(德水) 이씨(李氏) 이정(李貞)과 모친 초계(草契) 변씨(변(卞)氏) 사이에서 4남 가운데 셋째로 태어났다. 부친이 벼슬을 하지 않아 집안이 가난하여 서울 생활을 못하고 모친의 친가가 있는 충남 아산 백암리(지금의 뱀밭 마을)로 이사하였다. 그는 뒤늦게 32세(1576년)에 무과에 합격하여 함경도 변방 삼수(三水) 고을의 동구비보(童仇非堡)의 권관(종9품)의 직책을 시작으로 죽기까지 20여 년을 주로 무관생활을 하였으며 억울한 누명으로 두 번 (1587년, 1597년)이나 백의종군(白衣從軍) 하는 쓰라림을 겪었다.
공(公)의 54년간 삶을 되돌아보면 32년간은 무과시험에 급제하기 위한 수련의 기간이었고 나머지 22년이 공인으로서 생활한 기간이었는데, 그중에서도 임진왜란 7년을 제외하면 하위직 벼슬살이를 전전하는 고행의 연속이었다.
임진왜란이 발발되고 나서 불과 2개월 만에 국토의 대부분이 왜군 수중에 들어갔을 무렵에도 전라 좌수군절도사가 된 李 충무공은 거북선으로 쳐들어오는 바다의 적을 수장시키는 등 영해를 굳게 지켰으며, 삼도 수군통제사의 중책을 맡아 남해에서 끊임없이 노략질하는 왜구를 무찔렀을 뿐만 아니라 항상 새로운 전략 전술을 개발하는 등 놀라운 창의력을 발휘하였다. 난중일기를 보면 공직자로서 구국의 일념으로 수범을 보인 부분이 여러 곳에 나타나 있다.
공(公)은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14개월 전 47세에 좌의정 겸 이조판서였던 서애 유성룡의 추천으로 전라좌수사로 임명되어 전쟁에 대비하였으며 전쟁 중에는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고 전승을 거두었다. 또한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위국헌신의 충성을 다하여 적을 무찔렀으며 마지막 노량 전투에 임하기 전 "이 원수들을 무찌른다면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겠습니다."라고 축원을 올린 다음 전투에 참여하여 전투 중 적의 유탄에 맞아 죽음에 이른 순간 "지금 싸움이 한창이니 내가 죽었다는 말을 하지 말라."고 하면서 마지막 순간까지 애국충절의 마음을 간직하였다.
참고 자료
○ ‘뉴리더십’, 빅터 H.브룸ㆍ아서 G. 제이고 공저, 매일경제신문사
○ ‘정치지도자의 정책리더십’, 이해영, 집문사